[사이언스 토크] 원조 그루밍족

입력 2013-02-15 18:44

화장하는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 ‘그루밍족’은 미용이나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일컫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남성 기초화장품 매출에 있어 2위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다. 불황 에도 남성용 화장품 시장규모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할 만큼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그만큼 그루밍족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루밍(grooming)의 원래 의미는 동물의 털 손질이다. 고양이가 혀로 낡은 털을 뽑거나 새가 부리로 털을 고르는 행위를 뜻한다. 특히 원숭이는 털 손질에 무척 관심이 많아 서로 그루밍 해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원숭이들은 그루밍을 하면서 털과 피부를 청결하게 해 질병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 또 땀이 증발하면서 남은 염분 성분의 피부 부스러기를 먹으며 염분을 섭취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그런데 정작 원숭이들이 그루밍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친화감을 표시해 사회적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게 바로 그것.

동물학자들은 원숭이 무리의 사회적 관계가 불안정할 때 수컷들 사이에서 그루밍 시간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무리 안에 발정한 암컷이 있을 경우 수컷들 사이의 그루밍이 아홉 시간이나 지속되기도 한다. 또한 집단의 크기가 커질 때도 그루밍 시간이 늘어나며, 먹이가 제공되는 무리의 경우 그렇지 않은 무리보다 그루밍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의사소통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 될수록 스킨십의 표현인 그루밍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루밍의 효과는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 프로농구(NBA)를 분석한 결과, 스킨십을 많이 나누는 팀일수록 승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수 개개인도 스킨십을 많이 할 경우 패스 성공률이 좋았다.

그 밖의 여러 실험에서도 스킨십은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의 분비를 줄여 몸을 건강하게 만들며, 어린이들의 두뇌 발달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주 안겼던 아이의 경우 기억력을 높이는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이 증가해 성장한 후에도 머리가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루밍족이 늘고 있는 것은 남성도 이젠 관리해야 인정받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루밍의 진짜 목적처럼 서로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애쓰는 남성이야말로 진정한 그루밍족이 아닐까.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