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욕쟁이 여학생
입력 2013-02-14 17:39
며칠 전 일본에 보낼 물건이 있어서 우체국에 다녀왔다. 명절이 지난 다음이라 평소처럼 한갓지려니 했는데 웬걸 들어오고 나가는 방문차량들로 입구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워낙 보낼 짐이 많은지라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큰 크기의 국제특송용 박스 네 개를 동행한 언니와 함께 온몸으로 굴려가며 테이프를 둘러 포장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송장을 작성하러 볼펜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가다 보니 유난히 여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을 보내려고 온 모양이었다. 그 틈바구니에 끼여 송장을 쓰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의 대화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다.
얼마 전 싸운 남자친구에게 초콜릿을 보내는 나름 복잡한 심경은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책상에 붙은 볼펜에게까지 짜증과 상욕을 퍼붓는 것은 듣고 있기 참 불편했다. 방송이었다면 15세 시청불가는 따 논 당상이었다. 주의를 주고 싶기도 했지만 입 열기도 귀찮을 만큼 진이 빠진 데다 놀아도 좀 많이 논 학생들 같은데 괜히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조용히 자리를 피해버렸다.
차례가 되어 박스를 창구로 옮기는데 마지막 것이 너무 버거워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다시 못 들 것 같았다. 창구 한쪽에 반쯤 걸친 상태로 들고 서 있는데 다른 박스를 저울에 얹으려고 들어올리던 언니가 기진맥진하여 그만 놓쳐버렸다. 반사적으로 몸으로 막아 바닥에 떨어지진 않았지만 들어올리기도 내려놓기도 힘들어 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누가 좀 안 도와주나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학생이 뛰어와서 박스를 들어주었다. 욕쟁이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하기조차 민망하고 미안했다. 욕을 많이 하고 말투가 거칠다고 불량학생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혀를 끌끌 차며 피했는데 막상 도움을 받고 보니 간사하게도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 사람이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 통성명하기에도 짧은 시간에 일천한 자기 경험과 선입견을 더해 감히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정 짓고 호불호의 꼬리표를 달아버린다. 그 편견의 꼬리표를 떼어내는 데 적어도 60회 이상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하니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 회수 불가능한 꼬리표들이 양심에 걸린다. 눈에 안 보이는 인격모독.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마음으로나마 모두에게 용서를 빈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