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심판 대신 지지 받은 美 우파의 복귀 이면…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입력 2013-02-14 16:48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토마스 프랭크/갈라파고스

제목만 보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한국의 우파가 연상된다. 하지만 미국의 우파 이야기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경제 파탄의 주범 공화당이 2010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을 누르고 승리를 거머쥔 ‘불편한 진실’이 그것. 사실 2010년 중간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수주의의 재기에 대해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어려운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누가 되었던 간에 지금 당장 권좌에 앉아 있는 자들을 마구 몰아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러한 일은 공교롭게도 2009년 민주당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라이벌인 공화당이 다시 무대에 들어섰다.”(16쪽)

우파는 우파로서 잘못을 시인하는 대신 거꾸로 우경화를 가속화함으로써 공화당 내부에 남아 있던 중도 성향 인사들의 입지마저 약화시켰다. 우파에 의한 ‘급격한 우경화 전략’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인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한 음모론이다. 당시 뉴트 깅리치 전 연방하원 의장은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외쳤다. “과거 나치 독일과 소련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는 잘 알다시피 미국이 죽느냐 사느냐의 여부다.”(92쪽)

이 터무니없는 발언을 내뱉은 깅리치는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퇴출됐어야 마땅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그가 경고한 적색공포는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우파는 의료보험을 개혁하면 미국이 파멸한다며 음모론을 퍼트리는 이념 공세부터 중소기업을 방패삼아 대기업 감세를 확대하는 사업적 수완까지 물불 가리지 않는 수단을 총동원했다.

‘좌파 따라하기’ 전략도 주효했다. 설령 반대파의 전통적 자산이라 할지라도 쓸모가 있다 싶은 상징들은 우파들에 곧바로 채택돼 자신들의 것인 양 내세워졌다. 가령 이런 구호. “미국은 혁명가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은 혁명가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이는 확실히 우파의 구호는 아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현실 정치에서는 유권자가 공화당의 좌우 방향성보다 이들이 얼마나 일관된 목소리를 내느냐에 훨씬 큰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파의 ‘적반하장’ 전략이 유효했다”고 분석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 이은 신작. 함규진·임도영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