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3차 핵실험… 미스터리 북한을 들여다보다
입력 2013-02-14 16:48
출구가 없다/조나단 폴락/아산정책연구원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창비
북한은 미스터리다. 어떻게 고립무원의 처지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회주의 동맹국과 달리 끈질긴 체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을까. 그것도 유례없는 3대 권력 세습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경제적 난관 속에서도 어떻게 핵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과학·기술·산업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북한이 지난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전 세계가 갖고 있는 이런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수수께끼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책 2권이 나왔다. 핵 이슈를 다룬 ‘출구가 없다’와 북한의 권력 세습을 분석한 ‘극장국가 북한’이 그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 선임연구원 조나단 폴락이 쓴 ‘출구가 없다’는 ‘북한과 핵무기, 국제안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국제사회 당면 현안인 북한의 핵 개발 이슈를 다룬다. 따끈따끈한 주제지만 이를 다루는 그의 시선은 역사학적이다. 한반도 핵 문제는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됐는가를 체제의 태생에서 찾기 때문이다.
저자는 “핵무기 개발은 뚜렷한 목적을 지닌 장기적 노력이며 과학·기술·물질 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해야 가능하다”면서 역사적 궤적에서 핵 개발의 시원을 찾는다. 그래서 저자는 북한 정권의 수립자이자 근 반세기 동안 북한의 실력자로 군림한 김일성의 핵 개발 욕망을 분석하는 일에 책의 절반을 할애한다.
책은 김일성이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보면서 핵의 가공할 위력에 눈 뜨고, 정권 수립과정에서 지원을 받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자 핵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1960년대 북한 정권에서 진행된 핵 개발에 관심을 보였던 징후들을 포착하고, 결정적으로 70년대 초 미·소, 미·중 관계개선 등 국제사회 정치지형이 180도 달라지면서 위기감 속에 핵 개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본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60년대 핵 개발 결정설은 부정한다.
흥미로운 건 핵과 권력 승계의 함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자신의 사후에 대한 김일성의 밑그림이 체제 강화가 아니라 체제 유지에 있었고, 이를 위해선 부자 세습이 가장 나은 카드로 봤으며, 핵무기가 김정일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권력 승계 이후 후계자 김정일에게 숨은 핵 개발 욕망을 캐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북한의 핵 개발,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좌절 등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선에서 그치는 감이 없지 않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 노력을 저지할 수 있을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과거는 미래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핵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피력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협상카드로 취급한다기보다 이러한 무기들을 자국의 정체성과 안보계획의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의 다른 미래는 다른 지도자, 근본적으로 국가의 생존이나 번영이 핵무기의 지속적인 보유에 달려 있다고 믿지 않는 다른 유형의 체제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이화여대통역번역연구소 옮김.
또 다른 책인 ‘극장국가 북한’은 저자들이 모두 인류학자라는 점이 특이하다. 혁명적 카리스마 권력은 동구권 예에서 보듯 영속하지 않는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지적대로 카리스마 권력은 위기 때 출현했다가 일상의 질서가 잡히면서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카리스마 권력의 비영속성 논리에 저항하는 유일 체제다. 그 불가사의에 대한 열쇠를 공저자인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와 정병호 한양대 교수는 문화인류학 개념에서 가져온다.
바로 미국 인류학자인 클리포드 기어츠가 제시한 ‘극장국가’ 개념이다. 이는 체벌이나 감시 등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와 공연 등 과시의 정치로 통치되는 국가를 말한다. 극장에 던져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지배 권력의 힘에 맞춰져 있고, 구성원들은 자신의 삶을 초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예술과 정치를 조합한 이런 현대적 통치 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사하는 나라다. 저자들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승계가 진행되면서 북한에서 극장국가 정치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특히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치러진 ‘대국상(大國喪)’을 통한 추모와 그리움의 드라마, 2000년대 정기적으로 진행된 스펙터클인 ‘아리랑 축전’ 등을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내부 위기와 외부 위협은 북한으로 하여금 극장국가적 요소를 강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영속성을 특징으로 한 혁명적 카리스마에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답을 내리기 보다는 “북한에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국가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두 책 모두 북한의 정보 통제와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옛 소련과 동유럽 중국의 숨은 자료를 찾거나 기존의 문헌 영상 예술작품을 꼼꼼히 봄으로써 북한 사회의 숨은 욕망과 내부를 드러내는 학술적 역량을 발휘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들이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다는 점도 신뢰를 더해주는 요소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