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레슬링 퇴출
입력 2013-02-13 18:06
올림픽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리스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헤라클레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엘리스의 왕 아우게아스를 정벌한 뒤 이를 기념해 형제들과 달리기 시합을 벌인 게 올림픽의 시작이라고 썼다. 탄탈로스의 아들 펠로프스가 간악한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와의 전차 경주에서 승리해 왕위를 차지한 후 올림픽 제전을 창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우스가 형제들을 삼킨 아버지 크로노스와 레슬링 시합을 한 뒤 승리를 자축해 대회를 만들었다는 신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기원전 776년에 열린 제1회 고대 올림픽에서는 전차 경주나 레슬링은 없었고 달리기 경주만 열렸다는 게 정설이다. 레슬링은 18회 대회에 시작됐고, 전차 경주는 25회 대회 때나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근대올림픽이 부활하면서 레슬링은 1896년 첫 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에 포함됐다.
레슬링은 가장 유서 깊은 격투기 종목의 하나다. 이미 1만5000년 전 프랑스 동굴벽화나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부조 작품에도 등장한다. 창세기에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수메르의 서사시에는 영웅 길가메시가 야수 엔키두와 레슬링을 한 이후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산스크리트 문학에도 비마가 27일간 자라산다와 격투를 벌여 이기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고대 기록에 나타난 레슬링이 현재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레슬링·복싱이 결합된 종합격투기 판크라티온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쨌든 레슬링은 인류의 수렵 본능을 가장 잘 구현하고, 무기 없는 원초적 전투력을 다투는 대표 종목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년 하계 올림픽 25개 핵심 종목에서 레슬링을 제외키로 결정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크로케, 라크로스, 폴로 등 여러 종목이 올림픽에서 명멸했지만 레슬링은 인류역사의 오랜 동반자이자 올림픽의 상징적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퇴출 원인은 지나치게 원초적인 경기방식을 고집해 흥미가 반감되고, 판정시비가 잦은 점 등이라고 한다. 아무리 유서 깊은 경기라도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전통에만 안주하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 레슬링계가 이런 점을 깨닫고 부활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비슷한 위기 속에 경기방식을 일신해 정식종목으로 남은 태권도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