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준동] 체육단체는 체육인 손에

입력 2013-02-13 18:51


대한체육회는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컨트롤 타워다.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이다. 정가맹단체만도 55개에 달한다. 산하 단체들은 요즘 새로운 회장을 뽑는 데 한창이다. 13일 현재 회장을 선임한 단체는 52곳이다. 올해 선거의 특징은 기업인의 파워 재입증과 정치인의 대약진을 들 수 있다. 기업인이 회장에 오른 단체는 35곳에 달하며, 정치인 단체장도 예전에 비해 많은 8명으로 늘었다. 체육인 출신 수장은 고작 9명에 불과하다.

대기업 출신이 대부분인 기업인 중 현대가(家)의 파워는 단연 눈에 띈다. 55개 경기 단체장 중 핵심인 대한축구협회장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차지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 3선에 성공했고,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선출됐다.

기업·정치인 뛸 무대 아니다

재계의 허씨 집안에서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대한바둑협회장에 당선됐고,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대한골프협회장에 선임됐다. ‘자전거 전도사’로 유명한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SK그룹에서는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대한펜싱협회장에 재선출됐고, 최태원 그룹 회장은 대한핸드볼협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한화그룹에서는 김현중 한화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이 대한사격연맹 회장 자리를, 신은철 한화생명보험 대표이사는 대한승마협회장직을 다시 맡게 됐다.

삼성가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직을 연임하게 됐고, 삼성전자 북미 총괄 사장 출신인 오동진 대한체육회 이사는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에 다시 한번 선출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 정동화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은 대한체조협회장직 연임에 각각 성공했다.

정치인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현역 의원 6명을 포함해 총 8명의 정치인이 체육계 수장 자리를 차지했다. 현역 의원 6명 중에는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이 이병석(대한야구협회), 김태환(대한태권도협회), 홍문표(대한하키협회), 김재원(대한컬링경기연맹), 이학재(대한카누연맹) 의원 등 5명이나 된다. 야당에서는 민주통합당 신계륜 의원이 유일하게 대한배드민턴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번에 뽑힌 단체장들은 앞으로 4년간 해당 경기단체를 이끄는 것은 물론 오는 22일 치르는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대의원으로 참여한다.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체육회장 선거에는 김정행 용인대 총장과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출마해 치열한 2파전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박근혜 당선인과 가까운 인사들이다. 누가 되든 국가대표를 지낸 첫 경기인 출신 체육회장이라는 명예를 얻지만 정치 쪽에 기대고 있어 씁쓸한 맛을 남긴다.

진정한 선진 체육으로 거듭나야

빈곤했던 1960∼70년대에는 체육단체들이 돈을 끌어오는 데 탁월한 정치인에게 의존했고, 80년대에는 돈줄인 기업인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는 ‘스포츠는 정치·경제·법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율성을 유지한다’는 조항이 있다.

지난 5일 대한농구협회장 경선에서 민주통합당 이종걸,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을 당당히 누르고 농구인 출신으로 처음으로 당선된 방열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다. 정치인과 기업인에 기대는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의 일침처럼 체육인도 이제는 정치인·기업인에 의존하지 말고 독립성을 길러야 한다. 기업인과 정치인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조력자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 스포츠가 진정한 선진 체육으로 거듭날 것이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