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박왕 유죄선고, 역외탈세 뿌리뽑는 계기돼야

입력 2013-02-13 17:51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은 소득에 대해 한푼 에누리 없이 세금을 꼬박꼬박 내지만 자영업자들이나 기업들은 여전히 세금 누수가 많은 게 현실이다. 탈세 수법도 교묘해져 세금 부담이 아예 없거나 적은 해외에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두고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떠넘기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서울중앙지법이 2200억원대 역외(域外) 탈세 혐의로 기소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것은 이 같은 부유층과 기업들의 조세포탈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역외 탈세는 대다수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를 좀먹는다. 문제는 역외 탈세를 비롯한 지하경제 규모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탈세 수법이 갈수록 첨단화·지능화돼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재산이 세 번째로 많다는 오명을 갖고 있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 발표에 따르면 1970년부터 40년간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7790억 달러로 중국(1조1890억 달러), 러시아(7980억 달러) 뒤를 잇는다. 국내 30대 재벌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해외법인은 47개사에 달한다.

역외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선 긴밀하고 신속한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지구상에 검은돈이 숨을 곳이 없도록 조세조약이나 조세정보교환협정 체결 국가를 늘려가는 일이다. 때마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구글이나 아마존, 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들의 세금 회피에 대해 합당한 세금을 내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 정보를 공유하는 등 촘촘하고 다각적인 감시망 구축도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특히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실질적인 성과가 있도록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에 누구도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