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음세대를 세우자]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때 일으켜 세워주는 방법

입력 2013-02-13 17:26


교과서 같은 ‘옳은 말’ 대신 ‘가장 듣고싶은 말’ 해줘야

무너져 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 부모와 교사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나 교사의 말투, 눈빛, 태도를 통해 흘러간다. 보통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문제만 보이고 그 뒤에 위대한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급해진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그때부터 인간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부모나 교사는 말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그래서 문제를 지적하고 ‘옳다, 그르다’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곤 한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 맞는 말, 바른말이 상처를 주고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도록 무너지게 하는 원인이 될 때가 많다. 예수님은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감싸주셨다.

감싸준다는 것은 공감해주는 것이다. “힘들었겠다. 외로웠지? 화가 나고 속상했지? 수고 많았어! 넌 최선을 다한 거야! 괜찮아!” 어떤 똑똑하고 대단한 말보다 감싸주고 안아주고 공감해주는 이런 말 한마디가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된다.

감싸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평소에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해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를 짓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평소에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해주셨다.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0∼11)

간음하다 붙잡힌 이 여인은 평소에 무슨 말이 가장 듣고 싶었을까? 지금까지 이 여자는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비난과 정죄를 당하고 살았을 것이다. “넌 더러운 여자야!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넌 벌 받을 거야!” 사람들은 이렇게 맞는 말을 하면 여자가 회개하고 변화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죄는 회개가 아니라 무서운 죄책감을 가져오고 죄책감은 우리를 더 무서운 죄의 노예로 만든다. 이 여자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너를 고발하고 정죄하던 사람들을 내가 다 쫓아버렸어.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평생 사무치게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예수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분명히 여자의 삶은 놀랍게 변화됐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음이 상한 자를 감싸 안아주는 것이다.

K라는 아이가 유학 갔다 1년 만에 귀국해 방황하고 있었는데, 공부라고는 1분도 안 하던 아이였다. 그런 K가 인투 청소년 훈련학교에 와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꿈이 생겼다. 그래서 선생님과 하루 2시간씩 수능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느 주일날 1시간 동안 공부하고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누나가 들어왔다. 동생이 너무 한심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일어나! 넌 언제나 정신 차릴 거니? 딴 얘들은 수능 준비하느라 잠도 안자고 7시간 이상씩 공부한다는데 넌 뭐야!”

K는 억울했다. 내심 가족들이 칭찬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칭찬은커녕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야단치는 누나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막 대들며 싸우고 있을 때 아빠가 들어오셨다.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아빠를 쳐다봤는데 편들어주기는커녕 더 야단을 쳤다. “네 사촌형은 고려대 들어갔는데 넌 이딴 식으로 공부해서 전문대라도 들어갈 수 있겠니? 전문대도 못 들어가면 창피해서 사촌형네 놀러 갈 수 있겠어?”

맞는 말씀이었지만 비수처럼 K의 마음에 꽂혔다. 너무 아팠다. 그 순간 대학에 들어가 도시건축가가 되려던 K의 꿈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절망감이 덮치면서 K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날부터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열흘 이상을 시체처럼 살았다. 가족들은 야단도 치고 사정도 해봤지만 K는 문을 잠그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K네 집을 매일 찾아갔다. 선생님들은 인투에서 하는 가족 소통캠프에 K네 가족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정성에 감동한 K는 가족 소통캠프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게 됐다.

그날 밤 K는 강의를 듣고 기도 시간에 통곡하며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하나님께 다 말씀드리며 위로를 경험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에게는 마음을 닫고 있었다. 저녁 집회 때 아빠와 엄마가 앞으로 나와 회개하고 K에게 용서도 구했지만 K는 부모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아버님, 요구하는 말씀은 하지 말고 K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K야, 그래도 대학 들어가려면 공부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때 폭소가 터졌다. 아버지가 여전히 아들의 숨겨진 장점과 가능성은 보지 않고 문제만 보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님 잠깐만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제 말을 따라 해주실래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기 시작했다.

“K야! 네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 알아.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단 거 알아. 넌 리더십이 있어. 넌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야. 넌 영향력이 있어 친구들이 널 따르고 좋아하잖아. 넌 지혜가 있고 통찰력이 대단해. 멋있는 도시건축가 될 거야. 넌 꼭 해야 할 말을 지혜롭게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있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K의 얼굴에 미소가 잔잔히 퍼졌고 사납던 눈빛이 따뜻해졌다.

“K야! 앞으로 나올래? 아빠 좀 안아줄래? 아빠도 너한테 사랑받고 싶으시단다.” K는 앞으로 나와 아버지를 안아줬고 함께 울면서 기도했다. 그때부터 K는 엄마 아빠와 함께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단지 내 말을 따라했던 것이지만, 아빠의 칭찬하는 말 한마디는 평소에 K가 아빠에게서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다. 이 말 한마디가 아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리게 한 것이다. K는 학교도 나오고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삶에 놀라운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은 예수전도단 DTS 훈련을 받고 있다.

왜 아이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할까? 왜 아무 이유 없이 부모를 싫어할까? 물론 아니다. 불쌍할 만큼 이 세상의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만큼 부모에 대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게 된다. 부모에 대한 상처로 인생을 포기하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생을 포기하고 폐인이 될 만큼 자녀들에게 부모란 존재는 절대적이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와 교사들의 맞는 말, 바른말 때문에 상처받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화가 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말, 이해해주는 말, 나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말. 아직 멀었지만 노력한 것만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마음이 회복이 된 후에 엄격하게 훈련시켜도 결코 늦지 않다.

부모-자녀, 교사-학생간 대화 이렇게 해보세요

가족 모임 또는 소그룹 티타임을 제안하고 적절한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음료수를 준비해놓고 모임을 시작한다.

주제: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

부모(교사): 학교 얘기나 영화, 게임 등 서로의 관심사를 즐겁게 나누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모임을 주선했다면 아이들이 먼저 대화를 시작해도 좋다.

“아무개야, 엄마(선생님)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서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왜 이런 말이 듣고 싶었는지 알아?”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꼭 하고 싶은 말도 있었어. 얘기 해줄까?”

“너도 엄마 아빠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니?”

“왜 그 말이 듣고 싶었는데?”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뭐야? 서운한 거 속상한 거 다 얘기해도 돼.”

(형제, 친구, 선생님 등 대상을 바꿔 대화를 나눠도 좋다. 단 무언가를 사 달라는 얘기는 제외한다.)

하신주 원장 <온누리교회 인투교육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