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도주하는 마약왕·막아선 보안관 그들의 숨막히는 혈투
입력 2013-02-13 22:21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 슬픈 호러 ‘장화, 홍련’, 감성 느와르 ‘달콤한 인생’, 웨스턴과 한국액션을 버무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김지운(49) 감독은 장르의 문법에 갇히길 거부해왔다.
첫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역시 감독의 매력적인 콘트라스트(대비)가 잘 살아난다. 슈퍼카를 타고 멕시코로 도주하려는 탈주범과 그를 막아내야 하는 미국 국경마을 보안관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는 공간과 시각의 대비가 돋보인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멕시코와 인접한 무채색의 시골 국경마을 섬머튼으로 향하는 슈퍼카의 모습은 그 대비를 정확히 보여준다.
두 번째는 빠름과 느림의 대비다. 악당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를 타고 시속 450㎞로 달린다. 반면 이에 맞서는 시골마을 보안관은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나 구조하며 한가롭게 살고 있다. 힘이 철철 넘치는 탈주범 대 늙은 보안관, 첨단장비와 구식총기 등 김 감독 특유의 대비는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의 할리우드 첫 진출은 녹록지 않았다. 김 감독은 13일 시사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매뉴얼도 없고, 선배도 없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할리우드의 동양인에 대한 장벽도 높았다. ‘어서와, 너 할리우드는 처음이지?’하는 분위기였다.
한국과 시스템의 차이가 너무 커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 없이 내려오는 제작사의 지침 속에 자신의 개성을 어느 정도 드러내야 할지에 대한 갈등도 심했다. 한껏 배우들의 감정이 고조돼 뭔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순간, 점심시간이라고 돌아서서 가는 스태프들을 보면 창작의욕이 싸늘하게 식었다. 김 감독은 “첫 작품이고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했지만 초기 단계부터 극장에 걸리기까지 과정을 함께 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장화, 홍련’ 이후 할리우드에서 감독 제의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미 시나리오와 주연배우 등 모든 것이 정해진 상태에서 기능적인 연출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라스트 스탠드’는 달랐다. 그는 “시나리오 자체를 새로 쓸 수는 없었지만 초기 개발 단계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캐릭터를 제안할 수 있었다”며 “‘라스트 스탠드’는 단순한 액션 영화 이상의 어떤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연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국에 비해 감독의 현장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면적이고 무료한 캐릭터를 재미있게 만들고, 물량공세로 승부하는 액션이 아닌 생동감과 느낌이 있는 액션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자평했다. 특히 이 영화의 백미인 옥수수밭 액션장면은 당초 계획에는 없었는데 감독이 고집해 넣은 것이다.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 현지에서는 “I’ll be back”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터미네이터’의 히어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귀환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 감독은 “인류 최강의 남자보다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 한때 강력한 인물이었으나 낙향해서 한가하게 지내다가 일생일대의 사건을 만나는 인물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가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10년 만에 액션 영화 주연으로 돌아온 슈워제네거는 예전과는 달랐다. 헉헉거리면서 악인을 쫓고,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고, 시력이 나빠 안경을 찾는다. 인간미 느껴지는 영웅으로 돌아온 슈워제네거는 19일 한국을 찾는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