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엔低 정책 지지”… 외환 당국 촉각

입력 2013-02-12 22:44

미국이 인위적인 엔저 정책을 펴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에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혔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이 일본의 엔저 정책에 불만을 나타내는 상황에서 15∼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환율 마찰과 관련한 어떤 대책이 나올지 주목받게 됐다.

라엘 브레이너드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은 11일(현지시간) “미국은 성장 촉진과 디플레이션 탈피를 지향하는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 “일본이 구조개혁을 동반한 성장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일본의 무제한 양적 완화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일본의 인위적 엔저를 용인하는 것은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체력을 회복해야 미국 국채를 살 여력이 생기고, 그래야 미국 역시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잭 루 재무장관 지명자에 대한 의회 승인 지연으로 G20 재무장관 회의에 대신 참석하게 된 브레이너드 차관은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것은 선진 7개국(G7)이 강하게 확인한 사항”이라면서도 일본 재무성과도 자주 연락하고 있다고 말해 일본의 엔저 정책을 놓고 미국과 일정부분 협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도 “아베 총리가 제창한 2%의 물가상승 목표는 획기적”이라면서 “목표 달성기간은 2년이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은행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추가 양적완화를 실시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이날 프라이부르크에서 열린 강연에서 “통화약세 경쟁은 결국 패자밖에 남지 않는다”며 일본의 엔저 정책을 비난했다.

우리 외환당국은 브레이너드 차관의 발언 맥락을 확인하는 한편 외환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일단 브레이너드 차관이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 노력에 대한 지지를 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엔화 가치 급락이 우리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스위스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는 지난달 일본의 팽창적 통화정책으로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1% 평가 절하될 때마다 한국의 실질 수출 성장률이 일본보다 1.1% 포인트씩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었다.

위기가 코앞이지만 우리 외환당국이 내놓을 대응책은 마땅치 않다. 최후 수단으로 외국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거래세 도입까지 염두에 두고 있지만 제대로 정책을 실행하고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환당국은 이에 따라 당장 대책을 시행하기보다는 국제공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제공조는 시장 규제라는 직접적 수단보다 잡음이 적은 우회로다. 기재부는 재무차관회의(14∼15일), 재무장관회의(15∼16일)로 이어지는 모스크바 G20 회의에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주요 쟁점으로 논의될 때 중국 등 신흥국과 공동전선을 이뤄 우리 입장을 적극 개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훈 김찬희 기자, 세종=백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