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 1세 심장병·2세 딸 희귀병 앓고·3세 손자는 뇌성마비… 시민단체 특별법 제정 촉구
입력 2013-02-12 17:51
생활보호대상자인 문모(62)씨는 어려서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고 말도 잘 하지 못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시력마저 잃었고 지금은 당뇨병과 정실질환까지 겹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문씨는 자신이 이 같은 ‘암흑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친은 일제 강제징용으로 히로시마에 끌려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피해를 당했다. 문씨의 어머니 박모(87)씨에 따르면 부친이 화상을 당해 돌아왔을 때는 몸에서 진물이 나고 수족을 잘 쓰지 못했다. 또 서서히 시력을 잃었고, 동네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돌까지 던졌다고 한다.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병마와 싸우던 부친은 결국 숨을 거뒀고 어머니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왔다.
한정순(55·여)씨도 원폭 피해 2세다. 피폭자인 아버지는 심장병을 앓다 33년 전 세상을 떠났고 피폭 당시 히로시마에 있었던 한씨의 큰오빠도 심장병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한씨는 젊을 때부터 엉덩이뼈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이란 병으로 네 차례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하다. 게다가 한씨의 큰아들(32)이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식사와 대소변까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들을 보면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한씨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6년째 원폭 피해자 2세 환우회장을 맡고 있는 한씨는 “원폭 피해 2세들은 아직도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생계도 어려운데 병원 치료비까지 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원폭 피해자와 2·3세 환우, 시민단체들이 최근 ‘원폭 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정부와 국회에 ‘피폭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12일 “일본 원폭 투하 후 68년이 지났지만 피폭자와 그 자녀들은 신체적·정신적 장애와 사회·경제적 고립 속에 절망을 대물림하고 있다”며 “한번도 정부가 나서서 피해 전모를 규명한 적이 없었고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을 지원하는 법률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민간단체 등이 파악한 국내 원폭 피해자 1세대는 2671명(2012년 현재)이다. 이들 자녀들인 2세들은 대략 7500∼1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의 30%가량은 피폭 부모로부터 다양한 질병을 물려받은 환자로 추정된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원폭 피해 2세대마저도 고령화하거나 가난과 질병, 사회적 차별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대회의는 21일 특별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