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밀봉상서

입력 2013-02-12 17:41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지만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세기 전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기도 했다. 유명한 호손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메이요 교수 연구팀이 호손전기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작업 능률을 연구한 결과 작업환경이나 임금뿐 아니라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모든 분야에서 공식 조직보다 비공식 조직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엄격한 질서가 존재하는 공식 라인보다 동호회, 향우회, 노동조합 같은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류 회사들은 비공식 조직이 엄청나게 활성화돼 있다.

국가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서기 626년 6월, 당 태종 이세민은 막 황태자에 책봉됐을 때 백관에게 명령해 각자 밀봉상서(密封上書)를 올리도록 했다. 밀봉상서란 문무 관료들이 치국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건의하는 것이다. 8월 정식으로 황제에 즉위한 후에도 밀봉상서를 올리도록 했다. 몇 개월 사이 수많은 상서와 주사(奏事)가 마치 눈 날리듯 날아 들어왔다.

신하들이 올린 상서와 주사의 수가 하도 많아 침실 벽에 붙여 놓고 방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살펴봤다고 한다. 어떤 때는 이를 보면서 정치의 이치를 생각하다 삼경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젊은 황제 이세민이 온 힘을 다해 치세를 이룰 방법을 강구하면서 신하들의 의견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윗사람이 의견듣기를 좋아하니 아랫사람도 서슴지 않고 발언하는 문화가 이 시절에는 완전히 정착했다는 것이 사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신하들이 겁도 없이 황제의 잘못을 꼬집었지만 뒤탈은 전혀 없었다. 흔히 태종의 전반 치세를 ‘정관의 치’로 치켜세우며 통치의 전범으로 치는 일은 본인의 이 같은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출범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성적표가 시원치 않다. 잇따른 인사 실패에다 당선인 본인의 조용한 스타일이 한몫한 것이지 싶다. 역대 정권 출범기에 비해 지지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아니다. 공연히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다 익지도 않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신중한 편이 차라리 좋다. 다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어 언로가 막히는 일만 없다면….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