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그늘] 서러운 알바… 명절 쉬지도 못하는데 선물세트 강매
입력 2013-02-11 17:36
서울 대방동 A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모(22)씨는 설날 2주일 전인 지난달 말 편의점 사장 B씨에게 10만원 상당의 설날선물세트를 의무적으로 사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여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B씨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1만5000원 상당의 음료수 세트 2개라도 구입해 달라”며 “이번 달 월급에서 선물세트 비용을 빼고 줄 테니 물건을 챙겨가라”고 했다. 최저임금인 시간당 4860원을 받고 일하는 A씨에게 3만원은 약 7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이었다. 그러나 주인에게 밉보이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부담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물건을 샀다.
유통업체 W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권모(25)씨도 설날 1주일 전부터 ‘선물세트는 원래 살 거 아니냐’며 ‘실적을 올려야 하니 회사 쇼핑몰에서 사라’는 권유를 받았다. 권씨는 은근한 압박에 못 이겨 1만2600원짜리 김 9상자를 구입해 친척들에게 선물했다. 권씨는 “팀별로 실적을 따져 평가하기 때문에 많이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명절의 따뜻한 정을 표현하는 명절선물세트 판매에 대형 유통업체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가맹점주나 아르바이트생, 직원들에게까지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유통업체에서 가맹점이나 직원들을 상대로 설날선물세트 일정 수량을 강매하는 풍토가 여전하다.
소비자들이 편리한 인터넷이나 저렴한 대형유통업체에서 선물세트를 구입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편의점이나 소매업체들은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목을 맞아 가맹점에 들어온 선물세트나 양주, 과일 등 주문예약 상황을 매일 체크하며 판매를 압박한다.
서울 대치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송모(39)씨는 “슈퍼바이저(가맹점 관리인)들이 명절 때만 되면 선물세트를 강매하는 일은 이미 점주들에게 오래된 관행”이라며 “명절 때만 되면 선물세트 판매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