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NYT의 성취

입력 2013-02-11 17:16

2003년 5월은 뉴욕타임스(NYT)에게 치욕의 시간이었다. 제이슨 블레어라는 젊은 기자가 현장을 취재한 뒤 써야 할 기사를 자기 집에서 작문한 것이다. NYT는 5월 11일자 신문 1면에 허위기사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또 다른 기자가 쓴 기사가 표절로 밝혀졌다. 권위의 신문이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망신을 당하고도 발행부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분석가들은 ‘브랜드의 후광효과’로 풀이했다. 다소 흠이 있더라도 공공의 번영에 이바지해온 신문을 쉽게 버리지 않은 것이다. 1870년대에 죽음을 무릅쓰고 뉴욕 갱단의 범죄를 파헤치고, 9·11 이후에는 화가 노먼 로크빌의 작품으로 국민의 상처를 품은 곳이 NYT였다.

시련은 그다음에 다가왔다. 때마침 불어 닥친 온라인 열풍으로 종이신문의 인기가 급전직하했다. 독자들이 우르르 온라인 시장으로 이동하자 재빨리 웹사이트를 만들어 10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였지만 이들은 무료기사를 원했다. 재정위기 닥쳤다. 2011년 3970만 달러 적자를 보았고, 지난해 2분기에만 8814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NYT는 2011년 말 BBC 출신 마크 톰슨을 CEO로 영입해 변신을 꾀했고, 그가 띄운 온라인 유료화라는 승부수가 통했다. 지난해 4분기에 1억7690만 달러, 1년 전체로는 1억33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독수입이 광고수입을 넘어서는 언론산업의 이상적 수익구조를 이룬 점이다. 지난해 구독료 수입은 전년대비 10.4% 늘어난 9억5290만 달러, 광고수입은 5.9% 줄어든 8억9810만 달러였다.

결국 신뢰가 힘이었다. 영&루비캠의 평가 결과 NYT는 ‘믿을 수 있는, 지적 수준이 높은,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고 진실하다’는 답변이 나왔다. 독자 분포를 보더라도 대학원 이상의 학력자가 미국인 평균보다 세 배나 많다. 연간 가구당 소득은 15만 달러 이상, 1인당 수입은 7만5000달러 이상인 사람들로 나타났다.

규범도 한몫을 했다. 동료평가에 적용한다는 NYT ‘통행수칙’은 이렇다. ‘정직과 존경과 예의로 서로를 대한다. 다양성을 포용한다. 모험을 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도입하며, 가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정보는 힘이므로 서로 공유한다. 균형감과 유머 감각을 유지한다. 우리의 보도 업무는 신성불가침이다.’ NYT가 늪에 빠진 세계 언론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