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는 군고구마… 울산 봉사모임 12년째 선행
입력 2013-02-07 18:03
“군고구마는 됐으니 생고구마로 한 박스 주세요.”
12년째 군고구마를 팔아 이웃을 돕고 있는 조수현(45)씨는 지난달 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40대 남성이 ‘군고구마’ 대신 ‘생고구마’를 팔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 하느라 가뜩이나 고생이 많은데, 굳이 구워서 주지 말고 그냥 달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남성은 15㎏ 고구마 한 박스를 사며 20만원을 내밀었다. 시중 가격보다 배 이상 되는 돈이었지만 좋은 일에 쓰라며 모금함에 넣었다.
울산 봉사모임 ‘이웃사랑’ 회원들은 올 겨울에도 군고구마를 팔아 생명을 살리는 봉사를 이어갔다. 이들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두 차례 군고구마를 판 돈 1871만원을 지난달 28일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이번 겨울에 판매한 고구마는 2t이나 된다. 해마다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모임 회원들의 직업은 회사원, 목사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은 매년 겨울이 되면 직장 일을 끝내고 군고구마 통을 끌고 울산시 화봉동 사거리로 나선다. 12년째 나눔의 손길이 이어지다 보니 이 동네에선 유명인사가 된 지 오래다.
이들의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따뜻한 손길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100만원짜리 군고구마’를 팔기도 했다. 지난달 초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자신이 회사 동료·이웃에게 모은 성금이라며 100만원을 모금함에 담아 고구마 1개를 사 갔다. 조씨는 7일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고구마를 파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처음 이들이 군고구마 통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2001년이었다. 동네에 3살짜리 여자 아이가 소아암에 걸렸지만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조씨가 지인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조씨는 대학 때 군고구마 장사로 학비를 벌었던 기억을 떠올렸고, 그렇게 ‘군고구마 기부 천사’로 변신했다.
첫해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380만원. 작은 정성이 모여 마련된 이 돈으로 세 살배기 어린아이는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찾았다. 고구마 판매를 통해 모은 온기가 어린 생명을 살린 것이다. 이들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백혈병 아이를 돕거나 교복이 비싸서 입지 못하는 40명의 아이들 교복값을 마련해줬다. 조씨는 “이제는 울산 시민들이 군고구마를 사 먹는다는 것 자체가 나눔에 참여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