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명절나기] 좋은 집사님, 좋은 며느리 되기

입력 2013-02-07 17:39


20년차 주부 김모(48)씨는 4년 전부터 명절날 홀로 시댁을 방문한다. 연휴 첫날부터 시댁 식구와 명절을 보내는 남편과 자녀들과는 달리 김씨는 연휴 마지막 날에야 인사차 시댁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명절 음식 준비와 손님 접대도 시댁 식구와 함께하지 않는다. 맏며느리인 김씨는 대신 장만해둔 음식을 연휴 전날 시댁에 택배로 보내 명절 준비를 갈음한다.

친정에선 효녀, 교회에선 ‘좋은 집사님’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시댁에서만큼은 ‘나쁜 며느리’가 된다. 김씨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날 무시하는 게 힘들어 남편에게 말했더니 오히려 ‘맏며느리가 먼저 잘 모셔야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며 “남편과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마주치지 않는 게 서로 속 편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가족 문제로 명절이 부담스러운 건 대학생 이모(25)씨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이씨는 외가댁에서 지내는 차례 때문에 이번 설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차례상에 술을 올리는 의식부터 절하는 것까지 전통방식 그대로 따를 것을 주장하는 큰외삼촌 때문이다. 이씨의 어머니는 기도로 절을 갈음하려 할 때마다 외삼촌에게 큰소리로 면박을 당했고 자연스레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이씨는 “60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다른 가족들 앞에서 큰소리로 혼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매번 종교 문제로 명절날 집안에 큰소리가 나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얼굴 보기도 굉장히 면구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설을 앞두고 가족 간 갈등으로 명절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명절은 그간 보지 못했던 가족, 친지를 만나 정담을 나누는 날이기도 하지만 고부·장서 간 갈등이나 재산, 종교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날이기도 하다. 이는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이혼이나 비혼(非婚), 만혼 등으로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부모와 자녀 간 세대 갈등이 깊어지면서 가족이 모이는 명절날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날로 변질될 우려가 높아졌다.

가정사역 전문가들은 “가족 간 갈등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차이 없이 어느 가정이나 가진 문제이나 그대로 방치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명절날 기독교인들이 가정생활에 모범을 보이고 먼저 섬긴다면 가족 간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로를 이해하라

고부·장서 갈등은 명절날 가족 간 갈등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고소공포증보다 무서운 시월드(媤world·시댁의 신조어)’란 말이 유행할 만큼 시댁 식구를 어려워하는 며느리에게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시댁에서 머물러야 하는 명절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위들에겐 명절날 ‘처월드’ 방문이 부담스럽다. 연세대 코칭아카데미 서우경 책임교수는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시월드와 처월드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관계지만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들은 하나님이 맺어준 ‘영가족 공동체’”라며 “성경 인물인 룻과 나오미처럼 영적 관점으로 서로를 인정한다면 이번 설이 가족 간 화합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년 전부터 부부행복학교를 진행한 서울 목동주심교회 안정은 목사 역시 고부·장서 갈등의 해결책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줄 것”을 강조했다. 안 목사는 “시댁·친정 부모와 며느리·사위, 이들 가운데 누구도 안 귀한 사람이 없다”며 “성장 환경과 생활방식, 성격이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면 명절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설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로 갈등을 예방하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실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들어주는 대화’를 강조했다. ㈔치유상담연구원 동산가족센터 백유현 목사는 “가족 간 갈등은 대부분 대화가 부족하거나 대화를 잘못해 서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경우 생긴다”며 “부모나 가족 내 연장자들이 아랫사람의 말을 평가하는 대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가족 간 갈등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라이프센터 신산철 사무총장 역시 “가족 간 불편한 부분에 대해 터놓고 대화해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듣고 공감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명절날 이런 자세로 가족과 대화를 하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오해를 줄일 뿐 아니라 신뢰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명절날 가족 간 갈등 예방책으로 온 가족이 모여 추억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을 추천했다. 백 목사는 “각자 어린시절 재미있거나 특이했던 일을 말하다 보면 다소 서먹했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바뀐다”며 “명절날 TV 시청이나 고스톱 대신 모든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다면 자칫 부모 부양, 재산 분할이나 종교 문제로 예민해지기 쉬운 명절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삶으로 모범을 보여라

전문가들은 특히 타 종교를 믿는 친·인척을 명절에 만난 김에 당장 전도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상담심리연구원 원장 김홍찬 목사는 “타 종교를 가진 친지의 종교관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서 전도하는 것보다는 평소 따로 만나 대화하거나 기독교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백 목사는 특히 가족은 말 대신 행동으로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랐기에 말만 해서는 전도하기 어렵다”며 “추도예배에 참여하고 교회에 출석하라고 권유하기에 앞서 좋은 신앙인,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의 본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