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처신하는 진보주의자 각성해야”… ‘가난한 사랑노래’ 출간 25주년 시인 신경림

입력 2013-02-07 17:09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한 사랑노래’ 부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원로 시인 신경림(78)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집이라 할 ‘가난한 사랑노래’(실천문학사)가 출간 25주년을 맞았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이 시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암울했던 80년대에 가난한 청년들을 위무하며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 시엔 사연이 없을 리 없다. 6일 서울 인사동에서 시인을 만나 당시의 사연과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띄우는 ‘끝나지 않은 가난한 사랑노래’를 들어봤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시집인가요.

“시 쓰기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나온 시집이지요. 80년대 말엔 우리 사회가 시인에게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민족문제, 통일문제, 노동문제 등등. 그걸 안 다루면 무슨 시냐 하는 풍토였지요. 시는 우리 삶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서 많이 벗어나 있는 풍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시에는 사회적 요구보다 또 다른 아름다움, 한 단계 뛰어넘는 미학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 시집을 내고 그런 사회적 요구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졌다고나 할까요. 내 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시집입니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로 시작되는 ‘너희 사랑’이라는 작품은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렸는데 결혼을 앞둔 젊은 연인에게 써준 축시라지요.

“87년 내가 살던 서울 길음동의 평소 잘 가던 주막에 들렸더니 주인 딸이 할 말이 있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손님들이 자리를 뜬 후 주인 딸은 웬 젊은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는데, 결혼을 하고 싶지만 남자가 지명수배자로 쫓기는 처지여서 사람들을 불러놓고 결혼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었어요. 난 그들의 결혼을 독려하며 축시를 써주고 주례까지 맡아 앞날을 축복해 주었지요. 표제가 된 ‘가난한 사랑노래’는 결혼식 후에 한 편 더 쓴 작품이에요.”

-80년대 사회 현실과 오늘의 현실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시집을 내려 해도 검열이 있던 시절이지요.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라는 구절은 원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는데 출판사에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 낫겠다고 해 수락했던 일이 있었지요. 처음엔 ‘남의 시를 왜 고치느냐’고 반대했는데….”

-이 시집은 사회적 약자를 역사의 주체로 참여시키고 있어 그 유효성이 배가되는 듯한데, 80년대의 ‘가난’과 오늘날의 ‘가난’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언젠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면, 이 시대엔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른 점 같아요. 그때의 가난은 좀 낭만적인 데가 있었고 유동적이었다면 지금은 가난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 더 절망적이라고나 할까요. 우리 사회가 돈이 아니고도 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복지가 더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초보단계인 셈이지요. 부자한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해요. 가끔 모임 때문에 호텔에 가보면 엄청난 부자가 차고 넘치더군요.”

-수록작 ‘벽화’는 이 시집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인데 예컨대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지만/ 함께 분노하고 발 구르며 노래하지만/ 함께 노래하며 돌팔매질하지만’에서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란 누구인지요. 왜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다가 귀가하면 ‘우리이기’를 그치는 것일까요.

“이 시는 진보를 자처하는 한 젊은 대학 교수의 이중적 처신을 보면서 쓴 작품이에요. 땅도 많고 아이들도 해외 유학 보낼 정도로 유복한 사람인데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 축이었지요. 생각만 종북주의자일 뿐, 현실은 이미 기득권자이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 이들이 정말로 약자 편일까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늘 존재하지요. 진보적일수록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인데도 ‘우리는 더 내놓을 것이 없다’라고 버티는 부류가 그들이지요. 진보마저도 기득권층인 것이죠. 이들은 다만 권력의 자리에 서 있지 않다고 해서 또 다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게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진보진영의 패착 이유인 거죠. 이른바 강남좌파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게 그것이에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은 너무 앞장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너무 난해하다는 말이 있는데.

“난해시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아무리 읽어보려고 해도 읽히지 않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시들은 우리 시의 독자를 떨어져나가게 하지요. 그렇다고 쉬운 시가 다 좋은 시도 아니고 오히려 쉬운 시가 엉터리인 경우가 더 많지만, 젊은 시인들은 자신의 관념을 쏟아놓기 전에 독자에게 이해 받으려는 소통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이런 풍토가 된 건 대학 교수나 평론가들의 과실이 크지요. 일부러 어렵게 하기 위해, 어려운 시를 양산하는 건 큰 문제지요. 시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었는데, 인터넷 등 대중매체 영향도 있겠지만 시인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축소시킨 감이 없지 않아요.”

-곧 설인데 문단 후배들이 세배하러 오나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해방 이전엔 구정을, 해방 이후엔 신정을 쇠요. 그래서 구정엔 홀가분하게 등산이나 갈 계획입니다.”

소설가 현기영, 시인 정희성 안종관 등과 함께 무명산악회를 꾸리고 있는 그는 “술 끊은 지 1년이 좀 넘었다”며 “내가 빠지고 나서 문단 술꾼들이 좀 심심해 할 것”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에서 고요한 명상을 보게 된다. 노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 따위는 없을 것이지만 그가 흘러 온 자취가 “사람이 사는 일도 이와 같으니/ 강물을 보면 안다”(‘강물을 보며’)에 나오는 한 줄기 강물과 같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