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제설작업의 추억

입력 2013-02-07 17:38

‘레 밀리터리블’이 인터넷에서 화제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것으로 제설작업을 하는 공군 장병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멜로디에 맞춰 ‘제설, 제설’ 하며 삽질하는 장면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죄수들의 합창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패러디물을 본 예비역들이라면 제설 당시의 추억에 젖었으리라.

후방에서 군 생활을 한 기자는 눈을 치우며 고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우선 전방부대에 비해 적설량이 무척 적었다. 부대 연병장은 넓었지만 당시 지휘관이 제설작업을 독려하지 않았다. 장교나 군무원 한 명에 사병 한 명이 한 조를 이뤄 실험을 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지휘관의 관심은 연구성과에 쏠려 있었다.

연병장이 웬만한 학교의 운동장만큼 넓었고, 사병이 30명가량밖에 되지 않아 눈을 치우라고 했다면 제법 고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폭설이 내려도 장병과 차량이 오가는 길만 제설작업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눈이 수북이 쌓인 연병장, 아니 눈밭에서 축구를 하며 미끄러지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전방부대에서 근무한 친구들은 “누구 약 올리느냐”고 핀잔을 준다. 친구들의 제설작업은 지금 들어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요약하면 이렇다. 깊은 밤중이라도 눈이 오면 집합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치우러 나갔다. 제설작업을 마쳐야 쪽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눈을 보고 하늘을 원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부 병사들은 쌓아 놓은 눈을 삽으로 꾹꾹 누른 뒤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군대 아니랄까봐 각까지 잡은 것이다. 그걸 병사들은 설벽(雪壁)이라고 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설경을 감상하는 것이 당시에는 사치였다.

폭설이 내린 지난 3일 회식을 하고 귀가하다가 눈을 치우는 한 여성을 만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눈이 계속 쏟아지는데도 그 여성은 묵묵히 넉가래로 눈을 밀고 있었다. 지난해 말 블랙아이스로 변한 그곳에서 노인이 넘어져 구급차에 실려 간 것이 떠올랐다. 이웃을 위해 무심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도구함에서 넉가래를 꺼내 공동주택 앞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제설작업을 하는 동안 동네 주민 두 명이 지나갔다.

눈이 그치질 않아 내일을 기약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눈이 밤새 반 뼘가량 더 내렸다. 다시 제설작업을 하러 나갔다가 말끔하게 눈이 치워진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 한 이웃의 마중물이 작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출근길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