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당선인, 인선에 더 속도 내라

입력 2013-02-07 17:46

DJ·MB 때처럼 ‘박근혜 정부’도 비정상적 출범 가능성 커

돌이켜보면 새 대통령이 조각(組閣)을 제때에 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김종필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를 야당이 거부해 김영삼 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총리의 국무위원 후보 제청권 행사를 통해 3월 3일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 일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가 겹치면서 2008년 3월 13일에서야 조각 작업을 마무리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반복되지 말아야 할 장면들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도 같은 길을 걸을 공산이 커졌다.

윤창중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은 주요 인선에 관한 1차 발표가 8일 있을 것이며, 2차는 설 연휴 이후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낙마한 지 열흘 만에 인선 공백상태가 풀려나갈 모양이다. 윤 대변인은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는 차질 없이 출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일정대로라면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새 내각이 가동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후임 총리 후보자가 8일 지명되고, 여야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당초 합의한 대로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더라도 17명이나 되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선인 측에서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검증작업을 철저하게 했더라도 인사청문 과정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속단할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당선인이 국회에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20일 동안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 ‘박근혜 정부’가 기형적으로 출범하게 될 소지가 크다고 판단되는 이유들이다. 야당이 인사청문회 일정의 대폭 축소에 동의하고, 총리나 장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시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출범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당선인 측의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하겠다.

박 당선인은 인선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함께 일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도덕적으로도 별 흠결이 없는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이 고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 지금처럼 미적대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벌써부터 야당 일각에선 박 당선인이 총리나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검증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인선을 늦추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인선 지연에 대한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박 당선인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당선인에 비해 낮고, 박 당선인 직무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사 잡음 등 대선 이후 박 당선인의 행보에 실망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