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49) 구술의 역동성으로 무장한 전사… 시인 최치언

입력 2013-02-07 17:09


시·소설·희곡 넘나드는 앙팡 테리블

편협한 추상에 맞서는 날것의 미학


지난달 초 최치언(43)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인도네시아에 있다고 했다. “보름 일정으로 원시림을 뚫고 들어가는 오지 탐험을 막 시작했으니 전화도 곧 끊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음을 기약했다.

1970년 전남 영암 출신.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돼 등단한 그는 2011년 희곡 ‘미친 극’으로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기왕 ‘입증’이라고 했으니 말이지만, 그는 세상이 한 편의 부조리극임을 ‘입증’하는데 발군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앙팡 테리블이다.

1월 말 간략한 질문서를 보냈더니 역시 간략한 답변서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이력란에 적힌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가 최종 학력이지만 그의 초창기 시를 살피다보면 그가 만난 최초의 학교는 화장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 내가 장작더미 위에 누워 화장을 당하고 있었던 거야/ 가족들은 타오르는 불 밖에서 춤을 추고/ 나는 불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지/ (중략)/ 어머니가 조용히 일어나 말간 숯불을 들춰보는 거야/ 식구들 몰래 숯불에 감자를 구워 먹는 저 여자는/ 다시는 처녀가 될 수 없는 어머니는/ 울고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러니 너도 배고프지 않니/ 주둥이 미어터지도록 어서 너도 한입 베어 물렴/ 잘 익은 허기 한 근.”(‘화장터’ 부분)

“가족은 늘 죽음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는 말로 가족사에 깃든 슬픔과 비애를 갈음하는 그의 첫 시집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2005)는 “가난과 소외를 신화의 세계로 이끄는 구술의 역동성이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시’라는 텃밭에서 희곡이라는 들판으로 옮겨간다.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2008)은 그가 슬픔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맺힌 어떤 상처들에 대한 생각을 하다 구체적인 캐릭터가 잡힌 뒤 결국 희곡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시의 언어가 상징과 은유로 이루어진 난공불락의 성이라면, 희곡은 그 성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는 마치 군사들처럼 육질화된 언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어 속에서 이미지가 나오고 이미지에서 서사가 나오지요. ‘광주’는 다함이 없이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여전히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 번째 시집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2010)는 시와 희곡이라는 두 장르의 융합을 통해 더 강렬하고 더 극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좌측은 연필의 힘을 믿는다/ 나무의 치졸함을 믿고/ 의사당의 순결을 믿는다/ 좌측은 형제들의 오만을 믿는다/ 그러므로 좌측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우리가 늙는다는 것도/ 너희들이 여자이었다가 남자가 되고 그리고 여자로 사랑하는 나약한 방식을 믿는다// (중략)//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리는 우측하고만 싸웠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이것이 좌측이 준 선물이다.”(‘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부분)

이 시를 쓰게 된 것은 그가 ‘우리 모두는 실체 없는 편협한 추상하고만 싸우고 있지 않는가’라는 반성을 한 뒤이다. 그는 편협한 추상에서 빠져나와, 보다 즉물적이고 계획화되지 않은 날것의 미학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문학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주장입니다. 저는 시나 희곡을 통해 일관되게 부조리한 세상의 실체를 폭로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요. 글은 현재냐 과거냐의 시점을 떠나 한 번 세상에 발표되면 본인이 인정하든 안하든 계속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시인 축구단 ‘글발’ 일원이기도 한 그는 곧 장편 소설 ‘악의 쑈’가 출간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축구공은 상징인데 상징을 발로 차는 것은 즐거운 쾌감, 아닌가요?”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