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오종석] 1%대 물가의 위협

입력 2013-02-06 18:18


‘빵값이 떨어지면 빵을 만드는 공장의 생산이 위축된다. 공장 직원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고용도 늘기 어렵다. 직원들은 외식을 포기하는 등 씀씀이를 줄인다. 빵값은 더 떨어진다.’

물가 하락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침체기에 물가 하락은 독이 될 수 있다.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줄여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물가 2% 상승’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돈을 무제한으로 풀겠다고 공언했다. 1990년대 불황을 겪으면서 일본의 물가는 1%대로 떨어진 이후 마이너스까지 하락한 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등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일본은 지난해까지 최근 4년 연속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의 공언은 이런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5%다. 지난해 11월 1.6%, 12월 1.4%에 이어 석 달 연속 1%대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 1%대를 나타낸 것은 1999년 1월부터 2000년 2월까지 14개월 연속 2%대 미만을 기록한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체감 지수 높은 것은 문제

문제는 지금 상황이 10%대 성장률을 기록했던 1999년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0.4%에 그치는 등 2011년 2분기 이후 7분기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저성장과 저물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1%대 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장기 물가안정 목표치(2.5∼3.5%) 하단에도 크게 못 미친다.

특히 최근 지속적인 환율하락은 물가하락 가속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서민물가다. 1%대 물가 상승 속에서도 농산물 가격은 높은 수준의 상승세를 지속하고 공공요금 상승폭도 확대되는 등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채소·과실 등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9.3%나 상승했다. 지수 구성 품목 중 신선채소는 전년 동월과 전달 대비 각각 26.3%, 12.3% 급등했다. 배추(232.2%), 당근(123.1%), 파(91.6%), 양파(56.2%) 등의 가격은 가위 폭등 수준이다.

전기·수도·가스도 4.4% 상승,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으로 상승폭이 확대됐다. 이 같은 체감물가는 심리적으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금리인하 적극 검토할 때

현재 경제 상황이 1990년대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입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은행은 이제 금리인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가 계속되면서 환율은 폭락하고, 저성장 저물가로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장기불황의 덫’에 빠져들지 않도록 한은의 적극적인 금리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50여 차례 물가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물가안정 정책으로 4%대 물가를 1%대까지 안정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배추국장’ 등 물가안정책임관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 체감물가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경제는 침체국면에 빠져들었다.

경제활성화를 최대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새 정부는 서민들의 체감물가를 안정적으로 조절하면서도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지 않도록 제대로 된 물가정책을 추진하길 기대한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