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스튜어디스의 치마
입력 2013-02-06 17:47
아시아나 항공의 여승무원은 전체 3493명의 95%인 3305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이들에게 치마만 입도록 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바지도 유니폼으로 선택하라고 권고했다. 치마 차림은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승무원의 일반적 역할보다 여성성만 강조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유다. 경쟁사인 대한항공이 치마와 바지를 병용하고 있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스튜어디스 용모를 앞세운 항공사들의 마케팅은 오랜 전통이다. 대부분 승무원의 단아한 얼굴과 우아한 미소를 내세운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등 아시아권 항공사들은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웃음을 짓는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너울이 달린 모자로 개성을 뽐내고, 카타르항공은 스튜어디스의 고혹적인 눈동자를 부각시켰다.
한국 항공의 간판격인 대한항공의 광고는 대강 두 종류로 진행된다. 국내 방송에서는 취항지 정보를 전하는 방식이다. 항공사보다는 여행사의 광고를 닮았다. 대신 해외 방송에서는 과감하게 몸을 앞세운다. 패션모델 뺨치는 여승무원의 고혹적인 워킹을 보여주면서 “엑설런트 인 플라이트 코리안 에어”를 외친다. 여성의 상품화가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아시아나는 오히려 점잖다. 승무원의 치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슬로건 아래에 머물 뿐이다. 요즘은 정비사의 분주한 움직임 등 안전을 강조하거나 사회공헌 쪽을 강조한다. 이런 항공사가 한동안 승무원의 치마 길이부터 귀고리의 크기와 재질, 매니큐어의 색상, 눈화장의 색깔까지 규제했다니 아이러니다.
용모에 대한 엄격함은 ‘미(美)적 노동’의 산물이다. 특급호텔 종업원이나 명품브랜드 판매원,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여기에 해당한다. 호텔 여직원은 커피색 1호와 살구색 1호 스타킹만 신어야 하고 목걸이와 귀고리는 1㎝보다 작아야 하며 음식을 제공하는 직원의 머리는 ‘올백’이 기본이라고 한다. 큐레이터들은 검은 정장에 흰 블라우스를 입는 게 원칙이다.
항공기 승무원은 어떻게 봐야 할까. 비행기 안에서 이뤄지는 친절 서비스는 감정노동에 가깝지만 노약자의 짐을 올리거나 기내식을 운반하는 일은 육체노동이다. 미소와 근육, 치마와 바지가 동시에 필요한 직능이라는 이야기다. 인권위의 시정권고를 받은 아시아나는 “검토하겠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니 실망스럽다. 치마는 아름답고 바지는 밉다는 인식부터 바꿀 때가 됐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