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배신으로 얽힌 그들, 각자의 꿈을 꾸다… 연기파 배우 최민식·황정민·이정재 뭉친 ‘신세계’

입력 2013-02-06 21:40


최민식(51) 황정민(43) 이정재(40). 강렬한 카리스마와 선 굵은 연기력으로 승부를 거는 세 배우가 만났다. 스크린에서 두 명씩 또는 세 명이 단 한 번도 함께 호흡을 맞춘 적 없는 그들이었다. 한국영화에서 이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스팅이 또 있을까. 6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신세계’는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 중 하나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홍콩 누아르 범죄 영화 ‘무간도’(2002)를 떠올리게 하는 ‘신세계’는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찰 비밀 요원이 범죄 조직에 잠입해 스파이로 살아가다 보스의 심복이 된다는 스토리는 ‘무간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신세계’에서는 역으로 범죄 조직원이 경찰에 잠입해 스파이로 활동하는 설정은 없다는 게 다르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 과장(최민식)이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하는 말이다. 강 과장은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이 기업형 조직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하자 자성에게 잠입 수사를 명한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러 자성은 골드문의 2인자이자 실세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된다.

“우리 브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돼야!” 정청이 8년 전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처음 만나 친형제처럼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자성에게 강한 신뢰를 보내는 대목이다. 골드문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자 강 과장은 후계자 결정에 개입하는 ‘신세계’ 작전을 설계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후계자 전쟁의 와중에서 전개되는 정청과 자성의 관계는 뜻밖의 반전을 준비한다.

“약속 했잖습니까.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시시각각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 자성이 강 과장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작전의 성공만 생각하는 강 과장은 계속해서 자성의 목을 조여만 간다. 자성은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는 경찰과 인간적인 의리로 대하는 정청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영화는 세 주인공을 축으로 정의와 비리, 의리와 배신이 숨 가쁘게 전개되며 관객들에게 한눈팔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경찰은 악당 같은 음모와 작전을 꾀하고, 범죄 조직은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선보인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각본을 쓰고 ‘혈투’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선과 악이 자리를 바꾸고 정의와 배신이 공존하는 현실을 실감나게 그렸다.

영화에 리얼리티를 더하는 것은 역시 세 배우의 연기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이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유들유들한 공무원을 연기한 최민식은 묵직하면서도 치밀한 형사를 그럴듯하게 보여준다. 황정민은 ‘부당거래’에서처럼 순수함과 잔인성을 지닌 캐릭터를 능숙하게 연기하고, 이정재는 ‘도둑들’에서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연기로 스릴을 선사한다.

세 배우는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기대한 만큼 좋은 작품이 나왔다. 다만 서너 시간 분량으로 좀 더 호흡을 맞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최민식) “신분을 숨기고 이중생활을 하는 연기가 힘들었다. 두 선배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이정재) “피도 많이 흘리고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하게 보면 좋겠다.”(황정민)

쟁쟁한 세 배우를 캐스팅한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는 걸까. 박 감독은 “깡패가 정치를 한다면? 어떤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생겨나는 권력과 그 주변부를 다룬 이야기다.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설정은 정치라든지 우리 현실에서도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의 흥행 돌풍을 ‘신세계’가 이어갈지 관심이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