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안 나는 나라에서 유전 갖는 방법인 유전펀드는 유전 개발이익에다 분리과세 혜택

입력 2013-02-06 17:27


1975년 12월 6일 청와대에 기름 한 통이 도착했다. 바로 며칠 전 국내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됐다고 전해진 경북 포항에서 서둘러 공수된 것이었다. 중동지역 수출대책회의를 진행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이 석유를 회의실로 들여와 참석자들에게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남덕우 경제기획원 장관 등 경제 관료와 업계 대표들은 석유를 접시에 붓고 불까지 붙였다. 시꺼먼 불길이 솟구치자 함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석유 매장이 사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82년 에너지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였던 동력자원부는 전문가 회의에서 “포항 영일만에는 석유가 없고 조사 가치나 재론할 필요성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2004년 천연가스가 묻힌 동해 대륙붕을 찾아내 세계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하지만 ‘검은 황금’이 콸콸 솟는 유전은 30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투자자를 모아 다른 나라 유전에서 개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유전펀드’가 유행이다. 고수익을 챙길 수도 있지만 위험성도 적지 않다.

◇가장 돈 되는 ‘검은 황금’에 투자=석유가 나는 유전이나 이를 소유한 업체에 투자하는 유전펀드는 대표적 실물자산투자 상품이다. 요즘 돈 되는 물건으로 석유만한 것이 없는 탓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는 저서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에서 석유가 바닥나면 미국이 붕괴되고 인류는 농경사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석유 의존도가 그만큼 높고 퍼내면 퍼낼수록 매장량은 줄기 때문에 기름값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전제가 유전펀드에 깔려 있다. 획기적인 대체 연료가 나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국내에 처음 등장한 유전펀드는 2040억원 규모로 조성된 ‘한국베트남 15-1 유전개발 1호’다. 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한 베트남 해상 유전의 수익권 14.25%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석유 개발로 100억원의 이익이 나면 펀드 투자자들이 14억2500만원을 나눠 먹는 구조다. 2006년 12월 출시된 이 펀드는 수익권이 사라진 지난해 1월 청산됐다.

두 번째 유전펀드는 지난해 2월 출시된 ‘한국투자 앵커(ANKOR) 유전 해외자원개발’이다. 미국 멕시코만 해상 유전의 광업권 29%에 투자하는 이 펀드는 35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사고 팔린다.

가장 최근 판매된 유전펀드는 ‘한국투자 패러렐(Parallel) 유전 해외자원개발 특별자산 투자회사 1호’다. 앞서 두 유전펀드가 유전 수익·광업권에 투자한 것과 달리 이 펀드는 석유회사인 패러렐 페트롤리엄사의 지분 39%에 투자한다. 이 회사는 미국 텍사스주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유전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과 석유공사가 2011년 인수해 공동 운영 중이다.

패러렐 펀드는 설정액이 4000억원으로 몇 안 되는 유전펀드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달 말 모집을 끝냈고, 오는 4월 말 거래소에 상장된다. 수익은 분기마다 투자원금과 이익금을 지급한다.

◇절세효과 있지만 환율 위험 불가피=유전펀드의 주요 특징은 물가상승 헤지(방어), 분산 투자, 절세 효과다.

기름값이 비싸지면 물가가 오르지만 유전펀드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따른 자산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 또 유가는 주식이나 채권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주가가 떨어지지만 유전펀드에 투자했다면 분산 투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이 유전펀드 투자자를 모집할 때 가장 내세우는 장점은 분리과세 혜택이다. 액면가 기준으로 3억원 이하 원금에 대해서는 5.5%의 세금만 물리기 때문이다. 연 10% 수익을 가정하면 세후 수익률이 연 9.45% 수준이다. 유전펀드 세제 혜택은 2014년 말로 끝난다.

유전펀드는 주로 유가와 매장량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진다. 유전펀드는 한국무역보험공사의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에 가입해 자연재해나 전쟁, 유가·생산량 변동 등에 대비한다. 유가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일부 생산량의 가격을 미리 확정해둔다. 다만 오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7년 예상 생산량의 50%만 가격을 정한다. 환율 변동 위험은 초기 7년간 유입금액의 50∼90%를 미리 달러로 계약하는 장외 달러 선도 계약으로 일부 해소한다.

하지만 유전펀드는 예금자보호가 안 된다. 거래소에 상장되더라도 거래 부진 등으로 환금성이 떨어질 수 있다. 유전펀드의 보험료와 보험금은 미국 달러 기준으로 결제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절세만 바라보고 무작정 달려들 상품은 아니라는 뜻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