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너머로 소곤소곤 ‘가족의 情談’ 들리네… 설연휴 가볼만한 고택 & 민속마을
입력 2013-02-06 17:04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마음은 벌써 고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로 시골 고향집도 대부분 아파트나 개량주택이라 옛 정취를 느끼기 힘들다. 짧은 연휴로 인해 고향 다녀오기도 빠듯하지만 잠시 짬을 내 인근의 고택이나 민속마을을 찾아보면 어떨까.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어 훈훈한 정이 듬뿍 묻어나는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 등은 명절을 맞아 다채롭고 흥겨운 민속놀이도 준비했다. 자녀와 함께 예스러운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추억을 반추할 전국의 민속마을과 한옥마을 7곳을 소개한다.
◇북촌한옥마을(서울 종로)=북촌(北村)은 청계천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조선시대에 궁궐을 드나들던 왕족과 고위관료들이 거주하던 한양의 고급주택지이다. 현재의 한옥들은 일제강점기 때 땅이 분할되면서 큰 집들이 나눠지고 새로 집이 건축되면서 1500여 동으로 늘어났다. 삼청동길 등 골목을 중심으로 발전한 북촌한옥마을은 1984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박물관, 게스트하우스, 공방 등이 들어서 국내외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북촌 산책은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북촌관광인포센터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자료를 얻고 가회로를 따라 걸으면 ‘계동마님댁’으로 더 유명한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민재무관댁 등이 나온다. 북촌문화센터로 바뀐 민재무관댁의 뒷행랑채는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홍보하는 자료를 전시한 홍보전시관.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에서는 민화를 전시한 가회민화공방을 비롯해 금박공방, 닥종이인형공방, 동림매듭공방 등도 만난다(02-3707-8388).
◇선교장(강원 강릉)=오죽헌과 경포대 사이에 위치한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1708∼1781)이 300년 전에 터를 잡은 이래 후손들이 100년에 걸쳐 증축한 고택. 조선시대에 궁궐이 아닌 민가로서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집의 규모는 99칸이었지만 선교장은 102칸이었다.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행랑채, 사당, 활래정에 하인의 집까지 더하면 300칸에 이를 정도로 웅장한 규모였지만 지금은 123칸만 전해온다.
경포호수가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때 집 앞에서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해서 배다리집으로도 불리는 선교장(船橋莊)에 들어서면 맨 먼저 연못 위의 정자 활래정이 반긴다. 선교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처럼 길게 늘어선 23칸 크기의 행랑채와 선교장 주인이 거처하던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 선교장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나지막한 산에는 500∼600년생 노송 16그루를 비롯한 수백그루의 금강송이 운치를 더한다(033-646-3270).
◇외암민속마을(충남 아산)=광덕산과 설화산 자락에 위치한 송악면의 외암민속마을은 400년 역사의 양반촌으로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영암댁 참판댁 송화댁 교수댁 감찰댁 등 10여 가구의 기와집과 50여 가구의 초가집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추사 김정희의 처가인 건재고택으로 기둥마다 추사의 친필 주련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건재고택의 정원은 한국 전통정원 10선에 선정된 명품.
실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왼쪽의 소나무 숲과 오른쪽의 들판 사이로 난 고샅길에 들어서면 맨 먼저 초가집과 기와집을 둘러싼 돌담이 반긴다. 외암민속마을의 돌담은 5300m로 돌담 너머로는 눈을 뒤집어 쓴 장독대와 소담스런 정원 등이 정겹게 펼쳐진다. 외암마을 체험장에서는 한과 만들기, 떡메치기, 그네타기, 널뛰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드라마 ‘덕이’ ‘옥이이모’ ‘야인시대’을 비롯해 영화 ‘취화선’과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041-541-0848).
◇전주한옥마을(전북 전주)=700여 채의 한옥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전주한옥마을의 역사는 1910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오른다. 일본인들이 전주성 안으로 진출하자 이에 반발해 전주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지금의 한옥마을을 이루게 됐다. 전주한옥마을의 중심거리는 풍남문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태조로. 회화나무 가로수가 멋스런 태조로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동성당이 자리 잡고 있어 이채롭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한지와 술 등 다양한 테마를 담은 전통문화 체험시설이 발길을 붙잡는다. 집집마다 술을 빚던 가양주의 전통이 오롯이 살아있는 전통술박물관, 한지공예품 등 명장의 숨결을 느껴보는 전주공예품전시관, 전주부채 등 명품을 감상하고 쇼핑하는 전주명품관, ‘혼불’ 작가 최명희의 삶과 문학을 엿보는 최명희문학관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한옥마을의 명소.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씨가 머물고 있는 승광재 등 숙박체험시설도 많다(063-282-1330).
◇낙안읍성민속마을(전남 순천)=낙안면의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시간이 정지된 마을.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대로의 북쪽엔 동헌과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 외부 손님을 맞던 객사 등이 위치한다. 대로 남쪽엔 초가집과 대장간 장터 서당 우물 연자방앗간 텃밭 등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미로처럼 이어진다. 1410m 길이의 견고한 석성에 둘러싸인 낙안읍성은 원래 토성이었으나 조선 중기 때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1626년 석성으로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108세대가 살고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초가집들은 모두 비슷한 구조다. 돌담이나 흙담에 둘러싸인 집은 가구당 2∼3채의 초가와 마당, 텃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낙안읍성의 명물은 초가집을 에두른 나지막한 돌담길. 조선시대로의 여행이 신기한 듯 돌담 안을 기웃거리다보면 연자방앗간과 짚물공예방, 삼베 짜는 집, 서당, 도예방 등 체험시설이 차례로 스쳐 지난다. 향토음식점에선 보리밥, 추어탕, 표고무침, 더덕주 등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061-749-3347).
◇선비촌(경북 영주)=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옆에 위치한 선비촌은 전통가옥에서 숙박을 겸해 전통생활을 체험해보는 민속촌. 1만8000평 부지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아담한 초가 등 12채의 가옥을 비롯해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등 40채의 건물로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을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샤워장과 수세식 화장실 등을 설치해 재래 한옥의 불편함을 없앤 것이 선비촌의 특징. 옛 장터를 재현한 저자거리엔 순흥묵집과 인삼갈비집 등 토속음식점도 있다.
선비촌에서 눈길을 끄는 가옥은 넓은 대청 공간이 돋보이는 해우당 고택. 툇마루로 통하는 문을 열면 소백산의 국망봉과 연봉들이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이 정원처럼 보이는 두암고택과 인동 장씨 종가, 소박한 멋과 절제미가 뛰어난 중류층 가옥인 김상진 고택도 하룻밤 묵어가기에 좋다. 선비촌에서는 투호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그네타기 등 전통민속놀이와 짚공예 한지공예 천연염색 등 체험학습도 가능하다(054-638-6444).
◇남사예담촌(경남 산청)=경남의 하회마을로 불리는 남사예담촌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로 한옥의 단아함과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정이 넘쳐나는 500년 역사의 전통마을. 돌담과 토담으로 이루어진 3.2㎞ 길이의 돌담길 안팎에는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고목과 매화나무가 옛 이야기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남사예담촌의 트레이드마크는 이씨고가 골목길을 수문장처럼 막아선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 골목 양쪽에 뿌리를 내린 회화나무 두 그루가 휘어 X자로 보인다.
남사예담촌의 골목길 중 으뜸은 최씨고가의 골목길. 골목은 정확하게 ‘ㄱ’자로 꺾여 모서리에 바싹 붙으면 골목이 두 개로 보인다. 정씨 집안의 문중회의 장소로 쓰였던 사양정사로 이어지는 골목은 투박한 질감과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인다. 사양정사 앞에 위치한 하씨고택에는 고려시대 문신인 원정공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수령 670년의 홍매화 한 그루가 고색창연한 기품을 자랑한다. 남사예담촌은 백의종군 길에 나선 충무공 이순신이 하룻밤 묵은 마을로도 유명하다(010-2966-5543).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