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6)] 나이·성별·공간·이념… 장벽 뛰어넘은 ‘배움터’
입력 2013-02-06 16:54
초·중·고교가 개학을 했다. 주5일제 시행으로 평소 토요일에는 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예전처럼 길지 않은 방학을 덜 아쉬워할 만한데도 짧은 방학이 못내 아쉬운 표정들이다. 2월엔 개학과 함께 새로운 진학을 위한 졸업도 있다. 최근 종영된 TV 드라마 ‘학교2013’의 인기 비결 중 하나가 시청자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경험 공간인 ‘학교’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방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대안적인 학교들을 만들어 진정한 학교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경험이 체화되는 배움의 장이다. YWCA 역시 나름대로의 학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고 앞으로도 운영할 계획이다.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학교
지금은 유아는 물론 초·중·고 어느 학교에서나 여학생이 없는 곳이 없다. 그렇지만 한때 우리 역사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더욱이 제 나이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여성들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자 이제는 나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사회적 교육 모순을 타파하고자 YWCA는 어느 기관보다 여성 교육에 앞장섰다.
서울YWCA는 1924년 부녀자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원을 설립했다. 이 야학원은 47년 ‘기청공민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2012년 2월까지 80년 넘게 운영돼 왔다. 초기에는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6·25 전쟁 직후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 학교 갈 형편이 안 되는 많은 남녀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이후 초등학교 의무교육으로 학령기의 어린이들이 초등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배움의 때를 놓친 성인들은 나이 때문에 일반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기청공민학교에서 배움의 열망을 불태웠다. 서울YWCA 기청공민학교는 명동에서 운영되다가 96년 봉천종합사회복지관으로 이전해 제72회 졸업생까지 총 2905명이 다녔다.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최용신은 YWCA 농촌사업부 파견교사로 32년 경기도 반월면 천곡(泉谷·샘골)에 ‘천곡학원’이라는 강습소를 열어 한글을 가르쳤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집안 살림, 재봉 등 실용 과목들을 가르쳤다. 지금도 지역간 교육격차는 크지만 당시 교육소외가 더 심했던 농촌에 어린이와 성인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의 유언은 ‘나는 갈지라도 사랑하는 샘골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십시오’였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의 갈망을 이뤄주기 위한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0년 7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굴하기 위해 매달 ‘이 달의 문화 인물’을 선정했는데, 최용신은 2001년 2월 ‘이 달의 문화 인물’에 선정됐다. 교육 환경이 변화면서 기청공민학교는 사라졌지만 경기 성남 분당 야탑동의 YWCA은학(銀鶴)의 집, 안동YWCA 실버 대학 등에서는 나이를 초월해 배우려는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배움의 장들이 펼쳐지고 있다.
공간과 이념을 초월한 학교
YWCA에는 독특한 교육기관이 있다. 그것은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YWCA가 주관하는 국제훈련기관 ‘International Training Institute(ITI)’이다. YWCA는 이 기관을 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기관의 명칭을 듣고는 위치를 묻는다. ITI는 전 세계가 교육장이고,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전 세계의 여성운동가들이다. 이 기관은 10년마다 한 번씩 세계 각국에서 문을 연다. 2012년 11월에 이 기관의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다. 30여 YWCA회원국에서 온 53명의 ITI 참가자들은 ‘여성폭력추방과 평화구축’이란 주제로 강의와 워크숍을 가졌고, 강원도 철원의 DMZ를 방문하고, 여성폭력추방운동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다짐했다.
이들은 만남 이후 공간적으로는 자신의 나라에 머물고 있지만, 페이스북이나 각종 블로그를 통해 여성폭력추방운동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점검하고 활동 방법을 공유한다.
지식을 넘어서 지혜로 만나고 지지하는 학교
내가 성장을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세운 삶의 목표가 맞는 건지,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방황할 때 찾는 것이 학교이다. YWCA의 ‘더 숲(The SUP, Self Upgrade Project)’은 이름 그대로 자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다른 사람과 함께 성장해 ‘나무 한 그루’에서 ‘숲’으로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활동이다. 올해부터 지역 YWCA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프로그램 성격을 쉽게 설명하면 멘토링 활동이지만 독특한 것은 여기에 참여하는 멘토나 멘티 모두가 ‘더 숲’ 프로젝트의 일원이라는 점이다. 더 숲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정은경 청주YWCA 사무총장은 “나의 멘티는 장여민이라는 대학YWCA 지도자였던 젊은 친구인데, 내가 그녀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한다든지 무엇을 해 준다기보다 그녀와 소통하고 만나면서 내 자신이 더 새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다”고 참가의 마음가짐을 밝혔다.
YWCA가 매주 토요일 청소년들과 만나는 키다리학교(키우자, Y다운 리더)도 비전리더십, 팀리더십, 실천리더십을 갖춘 리더로 스스로 성장하도록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학교이다. 키다리학교 중요 원칙 중 하나는 ‘목표도 경험도 방법도 어른들이 정하지 말라’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 친구들과 함께 경험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스스로 찾아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며, 친구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지지를 보여주는 학교이다.
입춘에 내린 폭설도 봄의 기운을 막지 못한다. 강남 갔던 제비가 ‘지지배배’ 노래를 하며 다시 오는 계절, 우리가 다니고 싶은 좋은 학교 이름을 ‘지지배배학교’라고 지어보니 웃음이 난다. ‘서로를 지지하는 학교,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고 싶을 때 배울 수 있는 학교’에서 나이를 모르고 깔깔대며 신나게 개학식과 입학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박은실(한국YWCA연합회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