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위한 교재개발 절실”…‘다문화박사 1호’ 등극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 목사

입력 2013-02-06 13:41


1992년 4월의 어느 봄날,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거리 공중전화 부스 앞.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20대 아시아계 남성이 지나가던 박천응(51·안산이주민센터) 목사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막 입국한 듯한 그는 안산에 있는 고용주에게 픽업을 부탁하기 위해 자신이 있는 곳을 전화로 설명해야 했는데, 한국어를 몰라 쩔쩔매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박 목사는 그 남성의 질문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 질문은 당시 목회 방향 설정을 두고 고심 중이던 박 목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게 만든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로부터 20년. ‘코시안’, ‘국경없는 마을’ 등의 명칭을 맨 처음 만들어낸 박 목사는 국내 최초로 ‘다문화 박사 1호’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인하대학교 대학원 다문화학과(다문화학 전공) 대학원을 마치게 되는 그는 <‘혼종적 담론비판분석’으로 본 한국의 다문화담론 비판>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조만간 박사 학위를 받는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현장 사역 20년 만에 그들을 주제로 한 학문적 연구 틀을 처음으로 제공한 논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6일 원곡동 안산이주민센터에서 박 목사를 만났다.

-논문 주제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 관련 지원법’과 영화(세리와 하르), 뉴스 등을 통해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상위지배담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비판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다문화정책의 개선방안까지 담아봤다.

-논문 속에 나타난 우리나라 다문화 사회의 특징은 뭔가.

“우리나라의 다문화주의의 핵심 담론은 ‘국가경쟁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화에 따른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약자와 양극화의 희생물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특히 ‘통제와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 때문에 ‘차별·배제의 다문화사회’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바람직한 ‘한국형 다문화사회’를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현재의 차별·배제적 다문화주의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핵심과제는 다문화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까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안고 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다문화 지역사회 공동체와 다양한 협동문화를 창출해 내야 한다.”

-한국형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회의 역할도 빼놓을 없을 것 같다.

“다문화사회를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준비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극히 일부의 대형교회조차도 ‘외국어 설교’나 외국인들을 위한 ‘나눔과 섬김’행사에 그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교사 양육과 교재개발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당장 그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눈을 돌릴 때다.”

안산=글·사진 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