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줄기찬 ‘셀 코리아’… 주식·채권시장서 3조 썰물

입력 2013-02-05 18:34


‘빅 랠리’가 예상된 연초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 발을 빼 주가가 힘을 잃고 있다. 외국인들은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 투자를 늘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조원의 주식을 내던졌다. 그간 꾸준히 투자하던 채권시장에서도 1조원을 회수했다.

가장 큰 원인은 환율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엔화의 역습’으로 국내 수출기업 실적이 나빠진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원화 가치 절상에 따른 환차익까지 감안해 앞 다퉈 ‘셀 코리아’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1조9310억원이 순유출됐다고 5일 밝혔다. 외국인 자금은 지난달 초까지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 타결,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감에 매수세를 키웠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이후 급격한 매도세로 돌변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과 유럽계 자금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외국인의 주식시장 이탈은 아시아 신흥국 중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가 아시아 주식시장에서 총 47억2200만 달러(5조1200억원)를 순매수했다고 집계했다. 일본(73억 달러), 인도(40억6000만 달러), 필리핀(6억7000만 달러), 인도네시아(5억9000만 달러), 대만(5억5000만 달러), 태국(5억 달러), 베트남(1억1000만 달러) 등 아시아 국가 대부분에서는 주식을 쓸어 담았다.

금감원은 외국인 자금이 떠나는 이유 중 하나로 ‘뱅가드 쇼크’를 꼽는다. 세계적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뱅가드는 지난달 10일 신흥시장 펀드의 벤치마크(수익률을 비교하기 위한 비교 지수)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로 변경했다. MSCI에서는 신흥시장에 속하지만 FTSE에서는 우리나라 증시가 선진시장으로 분류돼 벤치마크에서 제외됐다.

뱅가드는 벤치마크에서 제외한 우리 증시의 투자 비중을 7월 초까지 0%로 줄이겠다고 했고, 매도가 예고된 시장에서 외국인은 재빠르게 주식을 처분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하락이 결정타를 먹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 하락으로 자동차·정보기술(IT) 등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요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악화된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는 특히 운송·철강 업종의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대기업이 엔화 약세에 따른 부담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환율이 급락하면서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은 지난달 채권시장에서도 9120억원을 빼갔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순투자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최근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것도 외국인 자금 흐름과 무관치 않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외국인 자금 때문에 우리 자본시장이 흔들리는 건 창피한 일”이라며 “우리 기관투자를 확대하고 시장참여자를 늘려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