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2달러의 기적’ 가평고 특별한 졸업식… 전란 속 학교 세워준 ‘60년 손님’ 온다
입력 2013-02-05 21:19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경기도 가평에 주둔한 미 육군 40사단 장병들 사이에 ‘2달러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40사단장 조지프 클레랜드 소장이 주둔지 인근 천막학교를 둘러본 뒤였다. 포성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의 허름한 천막에서 한국 어린이 150여명은 찢어진 노트와 책을 들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클레랜드 사단장은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동자에 담긴 열정을 부대원들에게 전했다. 1만5000여 장병들은 의기투합했다. 학교를 짓기 위해 1인당 2달러씩 기부하고 공병부대는 건축공사를 지원했다. 아이들도 학교가 생긴다는 기쁨에 고사리손으로 벽돌 나르는 일을 도왔다. 주민들도 동참했다.
공사 시작 석 달 만에 교실 10개와 강당을 갖춘 학교가 완공됐다. 비록 외관은 임시막사 같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움터였다. 40사단 장병들의 기부활동 소식에 미국의 장병 가족들은 열차 세 칸 분량의 책과 학용품을 보내왔다.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의 가평고등학교는 60년 전 이렇게 세워졌다. ‘2달러의 기적’이다. 교정에는 ‘이 학교는 미 제40보병사단 장병들이 대한민국의 장래 지도자들에게 봉헌한 것입니다’라고 적힌 표석이 있다.
7일 열리는 가평고 졸업식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40사단 소속 참전용사 존 커티스, 토니 클로켈, 클레런스 메이어, 마샬 타가트, 마빈 잭슨씨. 학생들에게 학교를 선물하기 위해 앞장섰던 이들이다.
40사단 참전용사들은 2010년부터 가평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1년에는 참전용사들과 함께 현역 40사단장도 찾아왔다. 강대헌(55) 교무부장은 5일 “60년 전 이 학교를 세워주고 지속적으로 따뜻한 애정을 보내준 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가평고의 첫 이름은 ‘가이사 중학원’이었다. 클레랜드 사단장의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대원 케네스 카이저 하사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카이저 하사는 40사단의 6·25전쟁 첫 전사자였다. 사망 당시 나이는 19세.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카이저 하사를 주민들은 ‘가이사’라고 불렀고, 학교 이름이 됐다. 이후 가이사 중학교, 가이사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의 가평고로 바뀌었다.
이들의 인연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클레랜드 장군은 75년 작고하면서 연금 일부를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부인은 76년 가평고에 연금을 기탁했고 한국에 올 때마다 장학금을 전달했다. 200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40사단 후배 장병들이 뜻을 잇고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