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중시 정책 선언 1년 미국의 선택은… 중국 봉쇄 ‘득보다 실’ 미국내 비판 목소리
입력 2013-02-05 17:35
2011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길에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을 치르며 중동에 과도하게 집중된 미국의 외교안보 자원을 아시아로 돌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ing)’으로 불리는 아시아 중시 정책의 선언이다. 집권 2기 들어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본격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 새 전략이 ‘중국 봉쇄’로 비춰지면서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미국 내에서 다시 분출하고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에서 보듯 중국의 반발도 거세다. 중동·북아프리카 정세 불안을 감안할 때 이 정책은 시기상조이며 역내 불안을 가중시켜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중국 현실 오판… 국방전략에만 치중”=아시아 중시정책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지난해 11·12월호에 실린 ‘외교축 이동의 문제점(The Problem with the Pivot)’ 논문이다. 필자인 로버트 로스 보스턴대 정치학과 교수는 2009∼2010년 중국이 베트남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불사하는 등 ‘거친 외교’에 나선 것은 미국의 판단과 달리 국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분석한다.
이보다는 내정 불안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의 경제성장에도 제동이 걸리며 실업자가 늘고 사회적 소요가 급증했다. 이미 도농 간, 연안과 내륙 간 심각한 빈부격차가 위험수위인 가운데 성장 정체 위험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군사력 과시와 민족주의적 행보를 통해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군사력 위협도 크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2011년 미 국방부는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 해군과 공군 전력의 30% 미만, 잠수함의 55%만이 ‘현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도 2012년 연감에서 중국군 장비와 무기 등의 기술력이 미국에 비해 20년 이상 뒤졌다고 분석한 바 있다.
로스 교수는 이처럼 자신감보다는 취약함에서 비롯된 중국의 세 과시를 오판한 미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불필요하게 중국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중국의 외부에 대한 공격성을 증가시키며, 지역 안정을 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미국과 중국의 협조 가능성을 감소시킴은 물론이다.
맬컴 프레이저 전 호주 총리도 최근 격월간 학술지 ‘글로벌아시아’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의 새 전략의 본질은 동맹국과 역내 국가들의 협조를 통한 중국 봉쇄이며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새로운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장기적으로 아시아 중시 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문가들도 외교 경제 국방 등 크게 3개 측면으로 구성된 이 정책에서 군사 전략만 강조되는 데 대해 부정적이다.
‘소프트 파워’의 저자이며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에 ‘중국을 봉쇄하려 하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배제나 봉쇄가 아니라 아시아 내부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이 지역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공격적이어서는 안 되며 군사적 부문에 지나치게 치중해 중국이 포위됐다거나 위협받는다고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후변화, 질병, 사이버테러, 핵확산 등 부분에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며 미국의 힘이 때로는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할 때보다 다른 나라와 함께할 때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중동이 불타는데… 재정위기 속 실효 있나=오바마 대통령의 새 전략 선언에 따라 2012년 미 국방부는 국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10년간 450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감축하되 대부분을 중동, 즉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철수 등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은 예산 감축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퇴역군인에 대한 지원 등 보훈예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다 3월 1일까지 연방정부 지출 삭감 방안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10년간 추가로 국방예산 5000억 달러를 줄여야 한다. 이렇게 빠듯한 재정 상황에서 아시아로의 예산과 인력 등의 자원 배분이 적절히 될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중국통으로 유명한 케네스 리버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책이 수사(rhetoric)로 끝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자원이 장기에 걸쳐 뒷받침돼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장래 위상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이 국내 경제를 얼마나 잘 회복시킬 것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리비아와 말리. 예멘 등의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발호, 지역 분쟁으로 번지는 시리아 내전, 이란 핵무기 개발 등도 아시아 중시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중동·북아프리카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아시아로 외교·군사적 자원을 더 집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역내 군비 경쟁 가속?=군사력 근대화에 힘써 온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 선언 이후 첨단무기 개발과 구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전략이 실행될 경우 중국의 연안 방어선까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는 연쇄적인 역내 군비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까지도 스웨덴 해군이 사용하던 잠수함 6척을 구입했고 베트남은 킬로급 함정 6척의 구입을 러시아로부터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군비 지출을 점진적으로 줄여 온 일본도 군비 증강을 호언하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대 리처드 비츠징어 교수는 “‘치고받기 식’ 군비 경쟁은 역내 안보환경을 매우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