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핑크 택시
입력 2013-02-05 17:15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택시를 타려면 공항을 나서기 전 먼저 쿠폰을 끊어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나 시외곽까지 이동거리에 따라 요금이 정해져 있어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바가지요금을 낼 염려가 없다. 필리핀도 쿠폰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전철에 핑크빛 여성전용칸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8차선 대로에서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건너다니고, 수도 외곽으로 나가면 여전히 소매치기가 빈번한 나라지만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우리보다 더 좋은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택시 색깔이 가장 다양한 곳은 태국 방콕이다. 1980년대 영국 배우 겸 가수 머레이 해드의 팝송 ‘방콕에서의 하룻밤(One night in Bangkok)’처럼 오렌지색, 핑크색, 빨간색, 파란색, 자주색, 보라색 택시에 이르기까지 현란한 방콕 문화가 택시 색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성을 위한, 여성 기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핑크 택시 원조는 영국이다. 2005년 4월 런던에서 ‘핑크 레이디스’라는 여성 택시기사들로 구성된 택시회사가 15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런던의 경우 매달 10명가량의 여성이 운전사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핑크빛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운전하는 핑크 택시가 인기를 끌었다. 핑크 택시는 러시아, 멕시코 등으로 번져갔고 쿠웨이트, 레바논, 아랍에미리트연합, 이집트 등 중동까지 확산됐다. 레바논의 경우 2009년 택시회사 한 여성 CEO가 3대의 푸조 차량을 개량해 ‘여성을 위한 택시’라는 의미의 ‘banet taxi’라고 이름 붙이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전북 익산시가 2010년 10월 핑크 택시를 도입했다. GPS를 이용, 콜센터에서 고객과 가장 가까운 택시를 연결해주는 브랜드 콜택시제를 시작하면서 1000대 중 50대를 심야시간에 여성 승객을 우선적으로 태우는 여성 우대 택시로 배정했다. 충북 청주시도 지난해 말부터 핑크 택시 66대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가 택시 서비스 향상을 위해 올해 여성 전용 핑크 택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승차를 거부하거나 외국인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을 받으면 택시면허를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시행한다. 승객을 골라 태우는 얌체택시나 잇따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밤길 택시 타기가 불안했는데 모처럼 택시 서비스가 나아진다니 반갑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