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홀리 모터스’ 홍보차 내한 佛 레오 카락스 감독 “영화 처음 봤을 때 새로운 나라 발견한 느낌”

입력 2013-02-04 19:45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연출한 프랑스 거장 레오 카락스(53) 감독. 그에게선 예민하고 까칠한 아티스트의 풍모가 느껴졌다.

4일 오전 서울 봉래동 프랑스문화원. 그가 폭설로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등장한 그는 답변 도중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계속 찍을 것이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한국영화나 감독은 모르고, 원래 다른 영화는 잘 보지 않으며, 관객은 ‘곧 죽을 사람’이니 신경 쓰지 않고, 평론가의 평도 그리 의미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베일에 싸여 있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 달라”는 질문은 아예 무시했다. 1시간의 간담회가 끝난 후 포토타임을 가지려 했으나 그는 “담배를 참을 수 없다”며 밖으로 나갔다. 무례하다기보다는 그저 그의 스타일이었다.

본명은 알렉상드르 오스카 뒤퐁. 자신의 이름 ‘알렉스’와 ‘오스카’의 철자를 혼합해 ‘레오 카락스’라는 예명을 지었다. 20대 초반에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로 천재적 면모를 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 ‘폴라X’(1999)로 세계 영화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13년이란 긴 공백 끝에 신작 ‘홀리 모터스’(2012)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고, 권위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2012 올해의 최고 영화’로 꼽혔다. 한 사업가가 고급 리무진 ‘홀리 모터스’에 올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곳곳을 누비며 아홉 가지의 다른 삶을 사는 이야기로 국내에는 4월 개봉된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드니 라방. 카락스 감독의 영화 대부분을 함께했다. 카락스 감독은 “드니 라방과 나는 동갑이고 키도 비슷하다. 데뷔작부터 알게 돼 여러 번 작업을 했고, 집도 걸어서 5분 거리로 굉장히 가깝다. 하지만 친하지는 않고 식사도 같이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찍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시키는 사이다. 그는 점점 더 좋은 배우가 돼 가는데, 이젠 정말 할 수 없는 역할이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지난 13년간의 공백에 대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 어려움이었다. 내가 다작을 하는 감독도 아니다. 비슷한 영화를 찍고 싶지 않고 계속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큰 위안이 됐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섬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내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이전 영화인들에게 빚이 있다. 영화의 원초적인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