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닮는 무르시… 이집트 ‘독재 복제시대’
입력 2013-02-04 18:34
독재도 유전처럼 복제되는 걸까. 지난해 반세기 만에 치러진 민주 선거에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과거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을 복제하고 있다. 무르시의 지지 기반인 중동 최대 이슬람 사회·정치 단체 무슬림형제단(MB)이 배후로 지목된다.
지난달 25일 이집트 혁명 2주년을 기점으로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대응한 경찰의 경경 진압으로 사망자가 60명을 넘어섰다. 비단 최근 일만은 아니다. 과거 정권을 청산하고 들어선 민주 정부는 안정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긴장과 폭력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 이집트 주간 ‘알 아흐람 위클리’는 최신호에서 경찰의 최루가스 과다 살포로 인한 피해사례를 집중 고발했다. 제목은 ‘눈물, 가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tear, gas, trauma)’였다. 애꾸눈은 시위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무르시의 독재 흉내는 대선 출마 당시 예견된 일이었다. 무슬림형제단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대선 후보 카이라트 알 샤테르 전 하원 의장이 돈 세탁과 테러 지원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자 부랴부랴 무르시를 대타로 내세웠다. 무바라크 정권 시절부터 극빈층 지원 사업으로 기반을 쌓은 무슬림형제단은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에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혁명 정신을 승계하기보다 정치적 승리에 집중했다.
허약한 지지 기반에서 오는 불안은 무르시가 민주주의 과정을 즐기기보다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게 만들었다고 범아랍 일간 알하얏은 최근 분석했다. 무르시는 야권의 반발 속에서도 대통령 권한과 이슬람 종교색이 강한 새 헌법을 지난해 12월 밀어붙였고 반란 시위자들을 거세게 진압했다. 무바라크 정권 당시 31년간 지속됐다 지난해 해제된 비상사태는 최근 포트사이드 등 3곳에서 부활했다. 독재 정권의 답습이었다. 시민사회, 다원주의라는 혁명 목표에서 스스로를 비켜나게 했다. 거리 시위는 잠잠한 날이 없고 야권도 드센 반격을 하고 있다. 자유주의자와 좌파, 콥트 기독교로 구성된 이집트 야권은 새 헌법을 만든 제헌의회가 모든 이집트인을 대표하지 못한다며 제헌의회 참여를 거부했다. 최고헌법재판소가 3일(현지시간) 제헌의회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판결을 다시 연기, 이집트 전역에서 불안은 과거 정권의 잔해처럼 남게 됐다.
이슬람 사회를 강조하는 무슬림형제단은 과거 무바라크 정권의 세속주의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집권당 자유정의당이 레바논의 섹시 여가수 돌리 샤힌을 후원한 사건은 살라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들끓게 했다고 중동 위성방송 알아라비아는 최근 전했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이 “정치세력 간 갈등 지속이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엄중한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집권당의 처사가 민심을 더욱 사납게 한 것이다.
무슬림형제단과 무르시는 그들이 상대하는 시위대가 과거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주역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시위대는 권력이 독재 흉내를 낼수록 과거 무바라크 정권 타도만큼 강하게 봉기할 것이라고 알 하얏은 예견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