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확산 ‘희망가’ 부른다… 20대 청년부터 백발 노신사까지, 밴드 ‘도너 사운드’ 탄생
입력 2013-02-04 18:14
지난 2일 오후 서울 홍익대 입구의 한 음악 스튜디오. 20㎡ 남짓한 작은 연습실에서 색소폰과 기타, 키보드, 드럼 소리가 제각기 새어 나왔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20대 대학생부터 머리가 벗겨진 중년, 백발의 노신사까지 다양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이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한 DNA는 바로 ‘생명 나눔’. 장기기증 문화 확산을 기치로 결성된 국내 첫 프로젝트 밴드 ‘도너 사운드(Donor Sound)’의 첫 연습날이었다.
한국장기기증네트워크(이사장 조원현·계명대 외과 교수)와 한국노바티스가 주관하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후원해 지난달 19일 공개 오디션을 통해 모두 9명의 멤버가 선발됐다. 오디션은 악기를 다루지 못하더라도 장기기증 관련 사연이나 열정을 갖고 있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장기를 이식받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영호(68) 권재근(53) 김유진(31·여)씨 등 3명이 합격했다. 장기기증 서약을 한 노연지(24·홍익대3) 김종상(40·가정의학 개원의)씨를 비롯해 박욥(31·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구은택(27·삼성울병원 직원) 김현중(27·공익근무요원) 권찬미(25·여·대학 휴학)씨도 합류했다.
색소폰을 맡은 최고령자 김영호씨는 간암으로 2005년 20대 뇌사자로부터 간 이식을 받았다. 그는 “소중한 생명을 준 젊은이의 삶까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색소폰은 배운 지 얼마 안돼 서툴지만 열심히 해서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17살 때 소아당뇨가 발병해 뇌사자로부터 두 차례 췌도 이식을 받은 김유진씨는 “삶의 마지막에 실천하는 아름다운 생명 나눔은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했다. 3년 전 부모님과 함께 장기기증 서약을 한 노연지씨는 “2년간 대학 밴드 활동으로 얻은 작은 경험과 재능이 장기기증 문화 정착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며 웃었다.
조원현 이사장은 “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기증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면서 “생명 나눔의 의미에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해 1000만명 기증 희망 등록으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도너 사운드는 약 2개월간 실력을 갈고닦은 뒤 4월쯤 국내 유명 밴드와 합동 공연을 열 계획이다. 이후 전국 병원 등을 돌며 의료진과 함께 하는 장기기증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장기기증자는 3655명(뇌사 2236명, 사후 1419명)인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2695명에 달한다. 장기기증 서약 등록자는 113만3968명이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