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외교부 충돌, 朴국정철학 거스른 ‘항명’ 쐐기… 기강잡기 시범케이스
입력 2013-02-04 21:43
외교통상부의 통상기능 이관을 놓고 외교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 충돌은 표면적으로는 헌법상 조약체결권의 해석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하지만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에 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 논란이 커지는 데 대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불편한 심기가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충돌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일개 부처와 인수위와의 싸움에서 처음부터 승자는 정해져 있는 것 아니냐(외교부 당국자)”는 데 양측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4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궤변으로까지 규정하면서 초강경 대응에 나선 데는 박 당선인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수위는 외교와 통상기능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박 당선인의 국정철학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연쇄 오찬 회동을 가지면서 “국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활동을 해보니 통상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로 가는 게 맞다”고 밝히는 등 수차례 통상교섭권 이전 필요성을 직접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장관이 “헌법의 골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하자 인수위 고위 관계자가 나서 강력한 쐐기를 박은 것이다.
진 부위원장의 경고에는 외교부를 시범 케이스로 삼아 공직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정권 초반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도 읽힌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안에는 통상교섭권뿐만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영역, 새 부처 명칭 등 쟁점이 산적해 있다. 외교부의 ‘항명’을 용인할 경우 다른 부처에서도 줄줄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조직 개편안에 부정적인 민주통합당과 일부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반드시 원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외교부는 진 부위원장의 격노에 침묵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장관께서 적잖게 당황하신 것 같다”며 “인수위에서 저렇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김 장관 발언 이후 더 이상의 ‘추가 액션’은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김 장관 발언에) 속은 시원했다”면서도 “하지만 사실상 게임은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의 입장 표명 시기와 헌법 거론이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5일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 이후 외교부 수뇌부는 내부 반발을 무마하는 데 비중을 뒀다. 문제제기 시기를 머뭇거리면서 놓친 뒤 ‘뒷북’을 쳤다는 것이다. 실제 박 당선인이 “통상이 산업 부처로 간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다음날 김 장관이 정면으로 이에 반대하는 모양새가 됐다. 또 충분한 공론화 없이 통상기능 이관이 결정된 데 대한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금이라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를 펴지 않고 헌법을 거론해 ‘되치기’를 당할 꼬투리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성규 유성열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