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페루 김명수 선교사] (2) 어느 전도사의 방황과 도전

입력 2013-02-04 18:00


사랑과 이별 빈번… ‘아버지 부재’ 남미 가정을 치유할 힘은?

라몬(가명·30) 전도사는 저희 신학교 목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년간의 실습을 마친 그는 작년 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론 연구-요한계시록 20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서 ‘목회학 준석사(Licenciado en Ministerio)’ 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주님의 일꾼입니다.

재학 중에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참 영리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 숙제를 해도 적당히 하지 않고 자료를 최대한 많이 찾아 완수하는 성실한 학생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공부를 잘 시켜서 장래 교수로 키워라’라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본래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 회심을 하고 장로교회로 왔기 때문에 신앙의 열심과 함께 성서적인 신앙과 삶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소위 ‘오순절의 심장과 장로교의 머리를 가진’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라몬 전도사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 야심차게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낮에는 버스 차장으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밤과 주말에는 교회를 돌봤습니다. 외부의 도움은커녕 예배당도 없이 지인의 집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른바 ‘자립형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열심히 사역하면서 회심한 가정도 있었고, 주일에도 10여명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기대되는 교회요, 교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몬 전도사는 갑자기 찾아와서 ‘교회를 사임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본인이 개척한 교회를 다른 신학생에게 넘기고, 본인은 이제 목회를 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하면서 여러 가지로 권면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래, 나가서 찬 바람을 좀 맞아봐라”고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몇 달간 버스 차장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찾아 왔습니다. 이제는 “목회를 안 하니까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전도도 안 하고, 그저 본인의 신앙생활만 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 버스 차장이나 운전사들까지 본인의 문제가 생기면 라몬 전도사를 찾아와 상담도 하고, 기도 요청까지 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함께 성경공부까지 하자고 요청해와 버티다 버티다 결국 버스 종점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나는 결국 목회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깨닫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상담을 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그에게 권면했습니다. “너에게는 아버지 같은 목회자가 필요하니 그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목회를 배우고 오라.” 그리고 페루 북쪽의 트루히요(Trujillo)라는 도시에서 정말 존경받는 목회자 밑으로 그를 보냈습니다. 라몬 전도사는 1년간 그 교회를 섬겼습니다. 가르치기도 잘 하고, 목사님과의 관계도 좋았지만 결국 1년만 딱 채우고 리마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또다시 상담을 했습니다. 라몬 전도사는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그들 모자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재혼(동거)해서 이복동생을 낳았지만 그의 새아버지도 가족을 버리고 사라졌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코카 재배에 뛰어들었습니다.

완전히 죄와 어둠의 세계로 떨어질 뻔했던 그때 라몬 전도사는 주님의 은혜로 예수를 만나고 회심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의 삶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삶을 추슬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리마로 나왔다가 우리 신학교(페루 장로교신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라몬 전도사의 삶에는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고, 오히려 아버지는 가정에 공포와 불안만 주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없습니다. 그에게 아버지란 없는 존재였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사랑’은 있어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의지하고 보호하고 인도할 아버지는 없습니다.

라몬 전도사는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를 잘 인도해주겠지’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에 그의 인간관계에서는 ‘약속과 기대’에 대한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계약과 지불’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아직 이 틀이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교 4년 동안 나는 라몬 전도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트루히요 교회에서도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희망이 없는 그의 논문 주제는 ‘예수의 재림’입니다.

페루, 아니 남미 전역에는 라몬 전도사와 같은 처지의 가정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라몬 같은 청년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두개의 성(姓)을 가집니다.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말똥말똥 쳐다봅니다. “넌 아빠도 없이 태어났니?”라고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물론 외국인을 자주 접하는 도시에서는 대부분 이해합니다).

한 가정에 다섯 자녀가 있는데, 그 다섯 자녀의 성이 모두 다른 식구를 본적 있습니다. 아빠가 서로 다른 두 여자에게서 두 자녀를 낳았고, 엄마도 서로 다른 아빠에게서 두 자녀를 낳았으며, 그 둘이 현재 동거하면서 한 자녀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남미에서는 결혼식을 두 번 합니다. 시청 결혼식(법적 결혼식)과 교회 결혼식(종교적 결혼식)입니다. 시청에서 결혼식을 하면 예식을 마치고 등록을 하게 됩니다. 그때 그 신혼부부에게 결혼 주례자가 엄숙하게 묻습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어떤 한국 선교사님은 시청 결혼식에서 그 질문을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킥킥 웃었다가 ‘엄숙한 결혼식에서 킥킥댔다’고 주례에게 아주 혼이 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들의 이름을 신혼부부의 가족란에 적어 넣습니다. 그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 자녀들의 성입니다. 그 자녀들이 이 신혼부부의 자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라몬 전도사는 리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준비한 논문을 발표하고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찬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부르는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합니다. 그를 암흑과 마약의 세계에서 건져내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그를 통해 사람들을 건져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는 못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그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까요?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나서일까요? 글쎄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라몬 전도사는 결혼해 좋은 가정을 꾸릴 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그는 가정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남미에서는 두란노의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동기를 부여하고 변화의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삶까지 이어가지는 못합니다.

우리 신학교의 교육 커리큘럼에도 가정 관련 과목을 많이 넣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정에 대한 가장 좋은 교육은 오직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가정에서 변화된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가정이 살아야 자녀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요즘 어떤지요? 이곳 남미에서 깨어진 가정을 살리기 위한 사역 경험이 풍부한 우리 선교사들이 다시 귀국해 또 다시 가정 사역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도 라몬 전도사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속히 깨닫도록, 내가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품고 목회하며 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사할 수 있도록, 그날이 속히 오도록….

라몬 전도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김명수 페루장로교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