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언문 파기’ 원인과 진단… “보수-진보, 합의 문구 정략적 이용”
입력 2013-02-04 19:26
“한국 보수 교계와 에큐메니컬 진영이 서로를 비난하면서 공동선언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세계교회협의회 제네바본부 관계자)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된 진부한 신학논쟁 때문에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준비위원회 대표들이 작성했던 공동선언문과 관련된 신학적 충돌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보수·진보 간 갈등과 대립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선언문 발표 후 에큐메니컬 진영에선 “내용과 절차가 연합정신에 위배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급기야 NCCK 총무가 나서 합의문 파기 선언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 교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WCC의 실체가 밝혀졌다”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번 파행의 핵심은 ‘개종전도 금지 반대’ 문구다. 에큐메니컬 진영이 이해하는 개종전도 금지는 폭력적이거나 강제적인 개종을 금지하는 것이지 복음전도에 반대하는 의미가 아니다.
한기총은 그러나 ‘WCC가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복음 전도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고 판단, ‘개종전도금지 반대’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밖에 인본주의 용공 동성애와 관련된 조항들도 매우 거칠게 표현돼 오해의 소지를 키웠다.
에큐메니컬 진영의 대응방식도 문제다. 늘 주창해 오던 ‘대화’와 ‘상호이해’는 사라졌다. 신학과 전통,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성명서 발표와 항의 방문, 심포지엄 개최 등의 집단행동을 통해 힘으로 압박했다.
WCC 총회 한국준비위 관계자는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너무 부족하다”면서 “에큐메니컬 진영은 보수 교계를 향해 왜 그렇게 폐쇄적이냐고 손가락질했지만 현재의 논란을 보면 스스로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은 “한국교회는 WCC 총회라는 세계적 대회를 앞두고 인류 문제에 대해 적극 논의하고 시대적 사명에 협력할 책임이 있다”면서 “‘교리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봉사는 교회를 연합시킨다’는 말처럼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진영의 적극 동참이라는 WCC 총회 유치 정신에 따라 과거에 얽매인 소모적 논쟁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