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중소기업 살리기’ 딜레마… 대출 늘렸지만 연체율 높아져 ‘빨간불’

입력 2013-02-04 17:33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딜레마’에 빠졌다. 올해 들어 은행권은 중소기업대출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대출한도를 늘리고 금리를 깎아주며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중소기업 대통령’임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차원이다.

하지만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대출 연체율은 갈수록 높아져 부담이 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에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은 지난달 말 중소기업대출이 총 205조9073억원으로 지난해 말 205조251억원보다 8822억원 증가했다고 4일 밝혔다. 각 은행이 연말에 규모가 커진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분류하고, 부실 중소기업은 정리하는 기업 재분류 작업을 했는데도 관련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통상 연말과 연초에는 기업 재분류 때문에 은행의 중소기업대출이 다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 지난해 12월 말 기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446조8000억원으로 1개월 전보다 7조7000억원 감소했었다.

반면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은행들은 박 당선인과 발을 맞추기 위해 앞다퉈 중소기업대출을 늘리고 있다. 금융당국도 거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에 “손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주문했다. 은행의 자체 의지와 상관없이 중소기업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형국이다.

은행들은 이처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출을 확대하다 보니 연체율 관리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경기침체 등으로 이미 연체율은 나빠진 상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1%로 2011년 말 0.89%에 비해 0.11% 포인트 올랐다. 기업대출 연체율도 1.18%로 1년 전(1.10%)보다 상승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내수 경기 부진 영향으로 제조업과 도·소매업의 연체율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환율 악재까지 더해져 연체율이 더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환율 급락에 수출 중소기업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자칫 은행의 무리한 중소기업대출이 부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새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소기업대출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상황”이라며 “기업을 살리려고 무분별하게 대출하다 결국 은행권 부실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