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새 대통령과 반칙 없는 사회
입력 2013-02-04 17:15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서는 사회 만들어야”
지난 2∼3년간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고액 개런티 방송출연이나 저자사인회 신청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정작 저자 자신은 이 어려운 주제가 왜 유독 한국에서 열광적 환영을 받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올해는 프랑스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 작품인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가 인기를 끌자, 원작 소설과 뮤지컬까지 덩달아 때 아닌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영화 시사회 직후 전문가들은 매우 길고 지루한 작품이라서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예상과 정반대로 큰 흥행을 보이자 영화 속 모습이 우리사회 현실을 매우 유사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실패한 정치혁명과 막 일기 시작한 프랑스 산업혁명의 후유증을 다루고 있다. 그 여파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민중들의 고된 삶을 그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의 좌절을 겪고 경제적 어려움에 분노하고 있는 젊은 계층들이 이런 주제에 공감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의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두 가지 사회적 열풍 간에 공통의 주제가 있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것에 크게 공감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거나 공평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라고 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지난 대선 때 양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내걸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핵심 안건은 순환출자의 금지였다. 언제부터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었을 뿐 양 후보 모두의 핵심 공약이었다. 국내외적 경제 여건 속에서 순환출자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하여는 전문가들의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전문적 분석에 상관없이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환출자의 해악은 너무나 많다. 순환출자를 악용함으로써 기업 오너는 적은 지분으로도 실제 지분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10% 내외의 쥐꼬리만큼의 지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100%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추구 행위도 바로 그 악용의 한 예이다. 계열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계 가족들이 음식점, 커피점 같은 작은 업종까지도 다반사로 싹쓸이하고 있다. 이런 곳에 중소기업의 참여는 아예 엄두도 낼 수 없다.
똑같이 기업에 취업한 후에도 능력에 관계없이 기업 오너의 자녀들은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고속 승진을 하고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쉽게 오른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아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임원들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퇴출시키고 있음은 공공연한 관행이다. 이런 부조리를 목격하면서 일반 사원들이 느끼는 비애와 좌절의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것을 시장경제 중심의 올바른 자본주의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자신의 지분이 얼마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 소유 기업인 양 능력이 되지 않는 일가친척을 마음대로 갖다 앉히거나 온갖 방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반칙이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있을 때만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 25일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 준비기관으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선정되었다. 대통령 당선인의 특별한 주문 때문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 때도 대기업이 주관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런 초심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