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立春大雪
입력 2013-02-04 17:14
입춘은 새해의 첫 번째 절기다. 양력으로는 아직 봄을 말하기 이른 2월 초지만 옛 사람들은 이때부터 겨울의 찬 기운이 물러가고 ‘봄(春)이 들어선다(立)’고 생각했다. 입춘이 지나면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와 ‘첫 천둥소리에 벌레들이 놀란다’는 경칩이 이어지고 춘분, 청명을 거치면서 진짜 봄이 찾아온다.
따뜻한 기운이 시작되는 입춘이라지만 예나 지금이나 춥기는 매한가지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는 한번쯤 들어본 속담이다. 오죽하면 ‘입춘 추위는 꿔도 한다’는 말이 있을까. 입춘이 지난 뒤에도 매서운 추위는 변함이 없다.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는 속담이 이를 말해준다. 대문에 ‘입춘대길’을 붙였는데 날씨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해서 나온 말이다.
입춘이 있는 2월에는 눈도 많이 온다. ‘입춘날 내린 눈 작대기가 잠긴다’는 속담도 있다. 마당에 세워둔 지게 작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왔다는 이야기다. 조상들의 은근한 허풍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만 “옛날에도 이맘때 눈이 많이 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실제로 기상청 기후자료를 보면 2월 대설은 기상이변이 아니다. 하루에 눈이 얼마나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최심신적설’이다. 기상청이 운용하는 전국 92개 관측소의 적설량을 따져보면 1955년 1월 20일 경북 울릉도의 150.9㎝가 지금까지 최심신적설 최고 기록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울릉도인데 각각 67년 2월 12일(118.4㎝)과 54년 1월 25일(94.1㎝)이다. 다음은 대관령이다. 92년 1월 31일에 92.0㎝, 87년 2월 3일에 90.3㎝의 적설량이 기록됐다.
울릉도, 대관령을 제외하면 2월 폭설이 두드러진다. 69년 2월 20일 강원도 속초에는 눈이 89.6㎝ 내렸고 지난해 2월 11일에는 강릉(북강릉관측소 기준)에 77.7㎝, 동해에 70.2㎝가 쌓였다. 98년 1월 15일 강원도 태백의 67.5㎝가 울릉도와 대관령을 제외한 1월 최심신적설 최고 기록이니 진짜 폭설은 입춘 뒤에 있다고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도 2001년 2월 15일 23.4㎝, 56년 2월 28일 22.8㎝, 69년 2월 16일 19.7㎝의 눈이 내렸다. 2월에 내리는 눈이 1월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입춘인 어제 큰눈이 내렸다. 서울에는 16.5㎝가 쌓여 기상관측 이후 여덟 번째로 많은 눈이 내린 날로 기록됐다. 대설(大雪)로 절기를 시작한 올해, 누구나 대길(大吉)하기를 기대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