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

입력 2013-02-04 17:13


고린도후서 5장 18∼21절

한국장로교가 새로운 100년을 여는 역사적인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자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역사, 교회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되고 화해된 생명공동체라는 교회의 거룩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불신앙의 짙은 안개에 휩싸여 갈 바를 알지 못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출발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자리인 성문 밖을 향해 길을 떠나는 하나님의 사람 ‘7000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8차 희년총회의 주제는 ‘하나님께 돌아와 소망 가운데 기뻐하라’였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되고 화해된 존재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망이 돼 살아갈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돈과 권력, 명예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자기 비움의 실천과 더불어 안전과 안락을 약속하는 바알의 제단으로부터 180도 돌이켜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자리, 즉 성문 밖을 향해 나아가는 회개의 길뿐입니다.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WCC 제9차 총회의 주제는 ‘하나님, 당신의 은총으로 세상을 변혁시켜 주소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변혁의 사건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치유와 화해의 사건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혁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세상의 소망이 되는 길은 교회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 변화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섭리하시는 생명 세계를 지탱하는 두 축은 하나님의 의와 화평, 즉 정의와 평화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추는 과정이 바로 치유와 화해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치유와 화해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동반합니다.

새로운 100년,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 운동을 통해 갱신돼야 합니다. 이 운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운동이요, 사랑과 용서의 운동이요, 생명운동이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운동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작은이’들의 생명공동체로서 자기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작은이들의 벗’이 되는 사회적 차원의 치유와 화해의 복음사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WCC 부산총회가 열리는 올해 한국교회는 먼저 교회 안의 냉전적 분열과 양극화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일치의 복음사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이 땅의 훼파된 하나님의 ‘생명 망(Web of Life)’을 통회의 심정으로 성찰할 때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가난한 민중의 현실과 고통당하는 피조세계 앞에서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존재론적 신앙고백을 드려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한 줌 퇴비와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하나의 작은 징검돌이 됩시다. 이 세상을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가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시다.

이홍정 사무총장 (예장통합 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