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지 사용한 ‘검소 대왕’ 정조… “휴지를 다시 뜬 것으로 편지지 만들어…” 외삼촌에 편지
입력 2013-02-03 18:37
조선시대 정조가 남인 영수인 채제공과 노론 거두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종이는 재생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장서각에 소장된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2첩을 번역하고 상세한 해제를 붙인 자료집을 3월 말 펴낼 예정이다. 이 자료집에는 정조가 세손 시절 외할아버지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 37통과 왕위에 오른 뒤 홍봉한의 아들인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 27통이 포함됐다.
편지를 보면 스무 살 정조는 얼굴에 난 부스럼 때문에 고민하고, 왕이 된 뒤에는 외가 친척들에게 떡국 만들 쌀 한 말을 선물하는 등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 특히 1799년 10월 3일부터 12월 30일까지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정조의 검소한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깨끗하고 두터운 편지지는 사용하기가 너무 사치스러워, 매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휴지(休紙)를 다시 뜬 것으로 편지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공장(工匠)은 솜씨가 졸렬하여 사용하기에 적합지 않습니다. 금년에는 시험 삼아 화성의 지공(紙工)에게 뜨게 했는데, 서울에서 만든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이에 300폭(幅)을 보냅니다.”(1799년 10월 17일)
정조어찰첩 해제를 쓴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정조가 채제공과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종이 질이 나쁜 데다 글씨도 몽당붓 같은 것으로 급하게 흘려 쓴 것이 있다”며 “최근 정조가 외가에 보낸 편지를 통해 마침내 편지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조는 꽤 오랫동안 재생 편지지를 사용했고, 1799년에 재생지를 만드는 장소를 서울에서 화성으로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며 “하지만 공무에서는 왕실용 고급지를 많이 사용하고 더러는 중국에서 수입한 종이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