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최대상권 동대문상가 ‘寒流’ 日관광객 매출 떨어졌는데… 웃돈 기승 상인들 ‘삼중고’

입력 2013-02-03 17:55


서울 신당동 A상가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박모(37)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다. 지난주 상가 주인이 전화를 걸어 “계약이 끝나는 2월말까지 가게를 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주인은 월세 100만원을 더 내라고 했다. 3일 만난 박씨는 “가뜩이나 일본 손님들도 줄고 장사가 안 되는데 월세마저 더 내라니 도저히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1년 전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400만원을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한 달 내내 휴일 없이 일해도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까지는 불량배들에게 관리비 명목으로 돈을 뜯기기도 했다.

지난달까지 동대문 B상가에서 가방 잡화점을 했던 정모(41)씨는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일을 접었다. 가게 주인은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인 지난해 11월 갑자기 전화를 걸어 “내가 들어가서 장사할 테니 나가 달라”고 했다. 정씨는 “상가 1층 가게를 계약할 때 보증금만큼의 프리미엄까지 냈지만 나갈 때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가게는 주인의 말과는 달리 두둑한 복비를 받은 부동산업자의 소개로 다른 세입자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류 바람을 타고 동대문상가가 최대 상권으로 떠오르면서 가게 주인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돈을 뜯어내는 조폭까지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엔저 영향과 불황으로 손님까지 끊겨 상인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일 돌아본 동대문상가는 대체로 썰렁했다. 평일 낮이어서 외국인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본말을 듣기는 어려웠다. M, H상가의 경우 다른 상가보다 손님이 더욱 적었다. M상가의 3층 이상으로 올라가니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5층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54)씨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평일에도 일본인 손님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손님들보다 옆집 상인들과 얘기하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H상가도 마찬가지였다. 4층 이상에 있는 상가는 하릴없이 앉아있는 상인들만 보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위치가 좋은 상가 주인은 계약시 여전히 웃돈을 요구하고 있다.

한 중개업자는 “요즘은 경기가 나빠져 예전보다 줄었지만, 자리가 좋은 에스컬레이터 옆이나 1층은 여전히 웃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상가 등에 여전히 남아있는 웃돈 관행은 속칭 ‘피’나 ‘뽀찌’ 등으로 불린다. 상가 주인이나 부동산업자 등이 ‘좋은 자리’를 이유로 많게는 보증금의 서너 배까지 요구하고 있어 상인들만 등골이 휜다는 얘기가 나온다.

상인들에 따르면 불량배들도 개입해 은밀히 돈을 뜯어내고 있다. A상가 황모씨는 “지난해에는 한 폭력조직이 둘로 쪼개지면서 두 곳에서 관리비를 요구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상인들은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상인들 진술이 일정치 않고 증거가 부족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1년 전 동대문에서 잡화점을 했다는 안모씨는 “상인들 중에는 짝퉁 명품 가방으로 한탕 하려는 사람도 있다”며 “이리저리 돈만 뜯기니 무슨 생각을 못하겠느냐”고 한숨지었다. 안씨는 지금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