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파시즘의 망령
입력 2013-02-03 17:46
지난 1월 27일은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2005년 유엔은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과 집시의 대량 학살뿐 아니라 캄보디아, 르완다, 보스니아 등지에서 벌어진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1945년 소련군이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이날을 기념일로 제정했다. 1942년부터 45년 사이 130만명가량의 수감자(그중 90%가 유대인이었다)가 살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훗날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특정 인간집단을 절멸하려는 만행의 상징이 되었다. 유엔이 1월 27일을 국제적 기념일로 제정한 배경이다.
이 기념일에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악명 높았던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무솔리니의 잘못은 히틀러와 동맹을 맺고 어쩔 수 없이 유대인 학살에 끌려들어갔다는 데 있을 뿐 그것만 뺀다면 그는 모든 면에서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이 베를루스코니의 발언 요지다. 슬며시 파시즘에 면죄부를 주고 무솔리니를 복권하려는 시도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세계 각국의 여론의 태도는 정당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처럼 베를루스코니의 발언을 ‘막말’로 치부하다가는 사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이탈리아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 이 막강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얻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미성년자 성매수, 탈세를 비롯해 온갖 추문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 내뱉은 황당한 발언이라 가벼이 여길 수도 있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
베를루스코니는 2011년까지 세 차례 총리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이달 말 총선에서 재기를 노리는 76세의 노회한 정치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달 27일 그가 보여준 모습은 갑작스럽다기보다 준비된 듯한 인상이 강하다. 유독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선택해 파시즘을 옹호하고 나선 일이 그렇고 같은 기념식 석상에서 조는 모습을 태연스럽게 보인 것이 그렇다.
뿐만 아니다. 1994년 처음으로 총리직에 오를 무렵 그는 파시즘의 후예임을 공공연히 내세운 잔프랑코 피니의 민족동맹과 연합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줄곧 베를루스코니는 파시즘과 무솔리니를 교묘하게 옹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솔리니가 정적을 탄압하고 이들을 산간벽지로 유폐시켰던 사건을 일컬어 “이들에게 휴가를 준 것일 뿐”이라 했던 발언은 악명 높다.
사실상 파시즘을 복권하려는 시도는 연원이 깊다. 파시즘이 패망한 후 파시스트와 공모자들을 숙청하려는 시도는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1950년대부터 일부 정치가와 역사가들이 이끈 파시즘의 복권 노력은 때로는 은밀히, 때로는 공개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점차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추세다. 새해마다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무솔리니 달력이나 그의 묘지에 몰린 참배객들의 모습은 파시즘의 망령이 이탈리아 대중의 마음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증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를루스코니의 행태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대중의 무솔리니 향수를 자극하고 또 이용한다. 그의 전략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다. 무솔리니를 둘로 나누고 한쪽을 강조해 다른 한쪽을 정당화하는 전략이다. 한편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고 전쟁 도발에 앞장섰던 독재자 무솔리니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늪지대를 신도시로 만들고 기차가 제시간에 운행할 수 있도록 한 근대화의 지도자 무솔리니가 있다. 근대화를 이룩한 무솔리니를 치켜세우면 세울수록 무솔리니의 독재는 정당화되고 옹호된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은폐하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자 민주주의와 근대화가 공존할 수 없다는 환상을 심어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심각한 자기 비하의 심리가 작동한다. 오로지 독재만이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 뿐이라는 자기 경멸이 그것이다.
김용우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