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대구 중앙로역
입력 2013-02-03 17:46
매년 2월이 되면 10년 전 그날, 한 지하철역이 떠오른다. 2003년 2월 18일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전날 야근을 하고 강남경찰서 기자실로 출근하는 길에 “대구로 가라”는 경찰팀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낮 12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배 기자 둘, 입사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수습기자 네댓 명과 함께 3대의 차에 나눠 타고 대구를 향해 달렸다. 오후 3시쯤 됐을까, 중앙로역은 아비규환이었다.
화재는 진압됐으나 지하철역 입구에선 여전히 새까만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 무리의 구조대원들이 부상자를 구급차에 옮기고 있었고, 건너편 인도에는 넋을 놓고 있는 부상자와 지쳐 쓰러진 구조대원들이 뒤엉켜 있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 아이가 연락이 안 된다”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절규했다. 가족들의 사연을 듣고 있다가 통곡하는 그들에게 정확한 인적사항을 다시 물어야 하는 건 퍽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 대구에서 지낸 시간은 경악의 연속이었다. 희생자 숫자에 놀랐고, 사고 발생 당시 안이했던 대응에 분노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우리의 재난 방지 시스템을 확인하면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령실은 화재 발생 신고를 받고도 지하철을 운행하도록 했고, 사실확인에 시간을 소비하며 허둥댔다. 구조대 역시 지하철 화재를 진압할 만한 장비와 경험이 부족해 한동안 현장진입을 못했다.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던 객차 안의 승객들은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한 채 희생됐다. 살아난 이들을 도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본인의 판단력과 운밖에 없었다.
그날 중앙로역에서 192명이 사망했다. 사고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상심으로 사망에 이른 이들도 있다. 사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가연성 소재가 대부분이었던 전국 지하철과 열차 차량의 내장재는 교체됐고, 좌석도 스테인리스 등 화재에 강한 재질로 바뀌었다. 지하철역 곳곳엔 분진 마스크나 방독면이 비치됐고, 구조대의 장비도 한층 강화됐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대형 사고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무너졌고, 지난달에는 서울 외발산동의 버스 차고지에서 버스 38대가 불탔다. 장소만 다를 뿐 손쉽게 휘발유를 구입해 불을 질렀다는 점은 차이가 없다. 사람이 많은, 밀폐된 공간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것 외에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