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공기업에서 낙하산이 사라지면

입력 2013-02-03 23:50


박근혜 정부 공기업에는 ‘낙하산 인사’가 없을 모양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 기간 중 두 차례나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초에 이어 지난달 30일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감사원도 지난달 인수위원회에 공기업 경영 실태 감사 계획을 보고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공기업 임원 임명에 대한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후속 작업도 벌어질 게 틀림없다.

앞으로 청와대나 실세를 등에 업고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자리를 전리품처럼 꿰차는 일은 없어질 듯하다. 그렇다면 낙하산이 사라진 공기업이 투명하고 원칙대로 운영되는 장밋빛 청사진만 남은 것일까.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얼마 전 공기업 자회사 감사 K씨를 만났다. 이른바 청와대에서 내려간 낙하산 감사다. 본인도 “나는 낙하산”이라고 했다. 많이 알려진 회사는 아니지만 직원이 2500여명에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회사다. 3년 임기 중 2년이 지났고, 정권이 바뀌었으니 언제든 물러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끈 떨어진 감사를 굳이 들먹이는 것은, 그가 말한 몇 가지는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있어서다.

그는 “낙하산이 사라지면 그 자리를 전문가들이 채울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공기업 감사 자리에 올 전문가는 뻔하다. 퇴직 공무원이거나 변호사, 회계사, 교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가 낙하산보다 낫다는 것은 일반화하기 어려운 명제다.

K감사는 “웬만한 공기업이면 거액의 변호사 비용과 회계 비용을 씁니다. 과연 감사로 온 변호사나 회계사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퇴직 공무원이 상급 정부부처와 얼굴을 붉히면서 싸울 수 있을까요. 감사 자리가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교수가 연구용역 같은 문제들에서 눈을 돌릴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지난주 발표된 국민권익위원회의 118개 공공기관 상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공개모집 등의 절차 없이 내부 임직원의 추천을 받아 법률고문이나 소송수행 변호사를 위촉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기업 임직원과의 인연, 전관예우 등을 통한 특혜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었다. 낙하산 대신 전문가들이 들어오더라도 공기업의 나쁜 관행들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방증이다.

K씨가 공기업 감사를 2년 해보니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적당히 타협해서 나눠먹는 구조였다고 한다. 나눠먹는 세 주체는 사장, 감사, 노동조합이다. 사장은 사장대로, 감사는 감사대로, 노조는 노조대로 자신의 ‘몫’을 챙기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이 적절히 타협할 수 있는 물질적 근거는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사장과 감사, 노조는 서로를 감시해야 하는 구조인데 이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적절하게 타협하는 구조가 고착되다 보니 개혁이나 혁신 같은 말들이 공수표에 불과하게 되고,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가 바람직하다거나 전문가 인선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좋은 낙하산’과 ‘나쁜 전문가’를 구분할 수 있는 인사의 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게 우선이고, 이에 적합한 인사라면 낙하산도 괜찮다는 유연함이 필요할 듯하다. 박근혜식 법치주의를 구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법률가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의 인사 파동은 그러한 인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재확인시켰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