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물처럼 흐르는 法
입력 2013-02-03 17:14
법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여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멘토와 친구 등 55명에 대해 사면을 강행한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조치라고 했다. 2월부터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당선인은 법의 남용이고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야당은 조선시대 임금도 이런 무모한 짓은 안 했다며, 왕조시대에도 없는 폭거로 법치를 무너뜨렸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여당마저 사면권 남용이고 사법정의에 어긋나는 무리수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신세의 만신창이 법의 현주소다.
법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지속적이다. 법을 지키면(준법) 손해, 법을 어기면(탈법) 이익이라는 불만이 잦다. 법 위에 군림하고 법을 무시해도 유야무야로 끝난다는, 있으나 마나한 법(무법)에 대한 냉소가 자자하다. 비민주적 통치시대에는 정의롭지 못한 법(악법)에 의한 인권탄압, 인권말살의 쓰라린 경험도 생생하다.
구두선에 그치는 법치주의
부자는 무죄, 가난한 자는 유죄가 된다는 유전무죄와 무전유죄, 권력과 가까운 사람은 무죄가 되고 권력에서 먼 사람은 유죄가 된다는 유권무죄와 무권유죄 등 법 집행의 불공정에 대한 지탄도 뜨거웠다. 이쯤 되니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법치주의가 강조되는 건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책임질 박근혜 당선인의 법에 대한 시각은 명료하다.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 내린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24일 오후 2시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박 당선인이 새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밝힌 이유다. 총리 후보자는 사퇴라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법이 어떻게 작동돼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은 꽤 구체적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란 어떤 법일까. 물 수(水) 변에 갈 거(去)를 합한 것이 법(法)이다. 법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사람은 7할이 물로 구성돼 있다. 물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물은 수소 2분자와 산소 1분자가 합친 화합물로 색 냄새 맛이 없는 액체이지만 그 성질은 오묘하다.
노자는 세상의 최고 선(善)은 물과 같다면서(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水善利萬物而不爭)/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處衆人地所惡)고 했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天下莫柔弱於水)/ 아무리 공력이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以攻堅强者莫之能勝)/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以其無以易之)/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弱之勝强)/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柔之勝剛)/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天下莫弗知)/ 행하지를 못하는구나(莫能行).
낮은 곳으로 스며 생명 보듬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순하여 다투지 아니한다. 막히면 돌아서 가고, 바위가 있으면 뚫어서 흐른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증기와 비와 물이 돼 세상으로 돌아와 뭇 생명의 지킴이가 된다.
법은 단단하고 냉정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말아야 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처벌과 규제의 강제력이 따르는 규범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법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19년이나 옥살이 시키는 법만은 아닐 것이다. 물같이 소중하고 생명을 구하는 법.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보살피는 법. 법이 물처럼 흐를 때 국민행복시대도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