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자진사퇴가 옳다

입력 2013-02-03 17:10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결단을 미루면서 헌법기관장 공백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4일로 헌재소장 자리는 이강국 전 소장 퇴임 이후 14일째 공석이다.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이 후보자가 여야 의견 차이로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인준 표결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를 지명한 청와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시간만 보내고 있다.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든지 아니면 이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든지 양단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도 도무지 말이 없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임명동의 대상이기 때문에 국회 인사청문특위의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상황에서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여야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 청문회 과정에서 이 후보자가 각종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지도 못해 직권 상정의 당위성도 낮은 편이다.

헌재소장 공백상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무엇보다 헌재재판관 한두 명 차이로 다수의견이 갈릴 수 있는 사건은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경우 신속히 결정돼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헌재소장의 공석으로 국민들만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대한 결정이 늦춰지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하게 된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거꾸로 헌법을 침해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 인선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만큼 당선인이 결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양측이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사태를 끌고 갈 일이 아니다. 국무총리 인선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헌재소장 공백사태도 심각한 사안이다. 헌재소장 공석사태를 그냥 내버려두고 가는 것은 심하게 표현한다면 헌법 경시나 다름없다.

박 당선인 측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마친 인사를 국회에서 낙마시킬 경우 앞으로 청문회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이 후보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후보자의 도덕성은 이미 헌재소장으로서는 자격이 없다는 게 공인됐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루 빨리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언제까지나 흘러간 인물을 놓고 씨름할 것인가.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후보자도 아쉬움은 있겠지만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조용히 사퇴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대통령이 체면을 생각해 지명 철회를 하지 못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거취를 정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헌재를 위해서나 옳은 일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