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진이 증언하는 간토 조선인 학살의 진실

입력 2013-02-03 23:52

1923년 일본의 간토(關東) 지방은 대지진의 피해로 비탄에 빠졌다. 이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민심은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변했다. 곳곳에 생겨난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본어를 시켜 보고 발음이 서투르면 바로 죽였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 한국인 김승학의 책에는 6066명인 반면 당시 일본 정부는 233명으로 추산했다.

이후 일본은 사건을 외면했다. 자경단원 일부를 기소해 놓고도 대부분 얼마 안 돼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줬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왜곡을 시도한다.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발행하는 고교 일본사 부교재 ‘에도에서 도쿄로’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대지진의 혼란 와중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라는 내용이 담겼으나 내년부터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비석에는 대지진의 와중에 ‘조선인이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적혀 있다”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사진수집가로 유명한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정성길 명예박물관장이 어제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일본의 주장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임을 알 수 있다. 사진에는 죽창을 든 자경단의 감시 아래 부패한 시신들이 쌓여 있으며, 여성들의 하의가 벗겨져 있는 등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 많다. 더욱이 사진 윗부분에는 ‘大正 十二年 九月一日(다이쇼 12년 9월 1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大正(요시히토 일왕의 연호) 12년 9월 1일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9월 1일이니 조선인 학살의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반성하기는커녕 “학살은 오해”라고 얼버무린다. 이게 학살이 아니라면 무엇이 학살이란 말인지 묻고 싶다. 국민들도 일본의 역사왜곡에 지친 나머지 어지간한 사안에는 반응조차 않는다. 책임이 있는 정부도 뒷짐을 진다. 역사마저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숨진 간토대지진 희생자들에게 후손들로서 볼 낯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