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2부) 5년, 새정부의 과제] 입시경쟁·사교육·등록금 걱정없는 ‘3無 교육’
입력 2013-02-03 17:05
⑦ 인재 키우는 교육
독일에는 입시경쟁이 없다. 사교육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생은 등록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여러 교육병(病)에 비춰볼 때 독일의 교육 현실은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교육제도를 무턱대고 수입해 이식할 수는 없다. 독일에서 공부하거나 체류한 경험이 있는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 교육을 바라보는 인식 등에서 벤치마킹 대상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제위원을 믿고, 교사를 믿는다=독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아비투어’다.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이다. 필수 2과목을 포함해 개인별로 5과목 정도만 치른다. 3과목은 필기시험이고, 2과목은 구두시험이다. 사고력이 정밀히 측정된다. 시험은 수험생 본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본다. 감독관도 학교 교사다. 출제는 각 주에서 하므로 주마다 문제가 다르다.
노유경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연구관은 시험제도 자체보다 ‘교육 주체 간의 신뢰’가 더 인상 깊었다고 했다. “주별로 시험문제를 출제하는데, 출제위원을 감금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문제 유출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주독한국교육원장을 지냈다.
최근 헤센 주 아비투어 수학 문제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하지만 떠들썩한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았다. 원하는 사람만 재시험을 봤다. 우리라면 누군가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을 것이다.
아비투어 가운데는 학교에서 보는 과목도 있다. 이 경우 학교 교사가 채점한다. 주관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고,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고 노 연구관은 전했다. “‘어느 주 아비투어가 더 쉽다’ 그런 말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문제 삼지는 않아요. 시험이 쉬운 곳에서 점수를 따 대학에 간다고 해도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 뒤처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강한 직업의식과 복지제도가 성공 배경=독일 중등교육은 직업교육을 중요시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학생은 전체의 40%가 안 되고,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은 60%가 넘는다. 인문계 학생은 김나지움이라는 학교로, 직업계는 직업계 고등학교(레알슐레) 또는 종합 직업학교(하우프트슐레)로 진학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 나이 때 진로가 갈린다.
레알슐레나 하우프트슐레를 졸업한 학생들은 직업학교(베루프슐레) 등을 거쳐 20대 초반에 일자리를 얻는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이원화 직업교육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직업교육이 성공한 배경은 여러 가지이지만, 독일 튀빙겐대 교육학 박사인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조사지표연구실장은 독일인 특유의 직업의식을 이유로 들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이 교과 실력은 더 뛰어납니다. 하지만 독일인은 자기 일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서 무슨 일을 해도 전문성이 뛰어나요.”
훔볼트대 교육학 박사인 한국교육개발원 강구섭 연구위원은 출산과 육아, 노후에서의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직업교육을 성공시킨 밑거름이라고 설명했다. “스무 살에 취직해 월급을 받으면 1200∼1300유로(약 177만∼191만원) 정도예요. 집세로 400유로(약 59만원) 정도 내고, 의료보험 150유로(약 22만원), 공과금 200유로(약 29만원)내고 나머지로 생활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집, 육아, 노후 이런 데서 보장이 안 되니까 이 정도 수입으로 살기 어렵지만 독일은 고교 졸업 후 직업을 가지면 생활이 되는 겁니다. 미래가 불안하지도 않고요.”
◇개인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교육=독일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김 연구실장은 독일 교육에서 배울 만한 점으로 인성교육을 꼽았다.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태도를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는 경쟁 상대이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이지만 독일은 함께 잘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요. 이건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하고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중요합니다.”
독일 청소년이 방과 후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체육이다. 누구나 운동 하나씩은 꼭 한다. 친구와 함께 하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성이 길러진다.
강 연구위원은 정치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은 우리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일은 ‘전쟁 가해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계속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역사를 현재화한다고 해요. 지식 위주로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건전한 비판 능력을 길러주는 민주시민교육도 체계가 잘 잡혀 있습니다.”
노 연구관은 제도를 운영하는 유연성을 강조했다. “진로가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로 한번 정해졌다고 해서 꼭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원하면 레알슐레에서 김나지움으로 옮길 수 있어요. 연속으로 유급을 받으면 다시 레알슐레로 돌아간다는 규정은 있죠. 하지만 원하면 하도록 해 줍니다. 김나지움 다니는 학생도 직업학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고요.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고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독일 교육이 갖고 있는 핵심 장점입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